100키로 달리기

한밭

by 민경남

[한밭 울트라 마라톤 대회 후기]

힘든여정이었다.

스쳐가는 바람, 몽글몽글한 구름, 눈썹 같은 조각달 같은 아름다운 문장은 80,90km를 넘나드는 달리기에는 좀 체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인내, 사투, 고난, 극복이라는 단어들만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움직일 뿐이다. 얼마나 더 힘들어야 골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97km 언저리건만 굽이져 흐르는 천변은 세월교, 신구교를 지나 관평교, 한빛대교를 넘었음에도 골인지점 엑스포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리는 들어 올릴 수 없고 팔도 저리고 양손도 땡땡 부었으니 서럽기만 하다.


뛰어가지 못하고 걸어가야만 하는 심정은 많은 슬픔과 고달픔을 요구한다. 조금만 들어도 다리는 찌릿찌릿하고, 발바닥은 물집이 잡혔으니 뜨거운 물에 데인 것처럼 쓰리고 아프다. 그래도 파워 워킹으로 걸을 수 밖에 없었고 한구형님은 이제 다 왔다고 옆에서 열심히 코치해 주신다. 98키로 지점 원촌대교를 지나 저 앞에 다리가 보이건만 아직도 골인 지점 그 다리가 아니란게 서글프다. 해는 떴는데 드라마 결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구형님과 안산 고속터미널에서 오전11시 10분 대전행에 몸을 실었다. 한숨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대전 도착이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터미널 주변에서 점심과 커피를 마시고 택시를 타고 대회장에 도착했다. 비는 조금 더 거세졌고 오후 4시까지 온다 던 비는 자정이 넘어서야 그치고 말았다.


이제까지 울트라 대회를 5번 뛴 것 같은데 후기를 쓰면서 완주 횟수를 헤아려보니 이번대회가 7번째 울트라 대회란 걸 알게 되었다. 2010년 4월 청남대 울트라를 시작으로 광주 울트라에서 11시간 초반대로 달린 적도 있고, 12년에 천진암,대구,한반도 횡단까지 했으니 13년만의 울트라 참가 대회다. 이번 울트라 대회는 몽골 고비사막 160키로 달리기 전초전으로 정묵형님께서 제안한 대회였다.


한구형님께 동반주를 부탁드렸다. 운동량에 비한다면 100키로 마라톤은 영 자신이 없었고, 형님과는 2012년에 한반도 횡단 308km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했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73km 까지는 가파른 언덕을 빼고 한번도 걷지 않았다. 방동 유원지 근처에서 1차 반환을 하고 달려오시는 정묵형님을 뵐 수 있었다. 형님은 20년만의 울트라 대회 참가임에도 11시간 50분 초반대의 호 기록으로 선두권으로 완주를 하셨다. 나이는 꺼꾸로 먹는게 분명하다. 내 옆에는 울트라 100회 이상을 완주하신 한구형님께서 계시니 든든하기만 하다.


천천히 달렸으니 편안했고 어느덧 64km지점이다.

선수들 모두 고통과 동변상련를 느껴 그런지 눈 인사만으로도 이웃처럼 가까워지는 것 같다. 자봉 요원들은 한결같이 친절했고, 비가 쉴새없이 내리니 갈증도 나지 않는다. 67km 지점, 하염없이 오르는 언덕에서 많은 선수들을 추월했다. 힘이 남은게 아니라 선수들이 천천히 걷거나 달렸으므로 추월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구형님은 당연히 따라 오실 줄 알았기 때문에 속도를 낸 것이었으나, 여기서 무리를 한 것 같다. 쉬지 않고 73km 급수대까지 천천히 달려나갔다.


이제 비도 그쳤고 27km만 달리면 골인이다. 제한시간 6시간이나 남았으니 여유가 있다.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구형님께서 힘들어도 천천히 달려야 속도 유지를 할 수 있다는 충고를 놓치고 말았다. 계속 걷다보니 점점 다리는 안 떨어지고, 억지로 끌려가는 두려운 소처럼 처절한 심정이었다. 88km 지점까지는 긴 평지와 언덕으로 이어졌고 시간도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모를 허탈감이 몰려왔다. 고개를 한없이 땅에 쳐 박고 체크포인트 반환점에 도착했다. 의자에 앉아 국물을 떠보지만, 거북한 속이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왔던 길을 다시 가는 내리막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체크 포인트 도착한 선수들은 거리에,피곤함에 지쳐 떨어진다. 이제는 뛴다 해도 개미 걸음에 불과할 뿐이다. 몸은 물에 빠진 소금을 짊어진 당나귀 같다. 사방에서 우짖는 두꺼비 소리는 연도에 선 갤러리의 응원일 것이라고 마음을 달래본다.


아직도 12km를 가야 되다니 끔직하기만 하다. 날은 밝아오고 갑천의 물안개와 새벽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는 잘 그려진 산수화 같건만 몸이 그러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어두울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갑천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곳을 쉬지 않고 뛰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91km지점에서 먹은 설레임 아이스크림은 참으로 달고 맛있었다.


같이 걸었던 순천에서 오신 여성분,안산 58개띠 형님들은 95km 지점부터 16시간 이내로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럴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못했다. 나 때문에 달리고 싶어도 못 달리시는 한구형님께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


빠르게 달려가는 싸이클과 퀵보드 행렬이 부럽다. 저것만 타면 편하게 골인이고, 꿈같은 휴식일덴데… 꿀 잠을 잘 시간에 공비 같은 얼굴로 밤새 달리고 있으니,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눈물 같은 생각들이 길을 막는다. 정말이지 이 몸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저 걸을 뿐이다. 1시간에 6.5km걷는 속도가 어느새 4.5km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제한시간 2시간이나 남았으니 기어가도 완주는 가능하다. 16시간 08분... 울트라 7회 참가 대회 중 이렇게 힘들게 완주한 건 처음인 거 같다.


골인지점 엑스포에는 부서질듯 태양이 쏟아진다. 골인지점에서 대회 사진봉사 하시는 분이 연신 사진을 찍어주신다. 박완서 소설 제목 골찌에게 보내는 갈채와 같다. 다리는 점점 휘청거린다. 아침밥을 먹는 천막에서도 의자에 앉기 어려울 만큼 다리가 저렸다. CP마다 몰래 담배를 피었는데 골인 후 담배는 공허가 몰려온다.


이제 불가마 사우나로 갈 시간이다. 뜨겁게 달렸으니 뜨겁게 몸을 지져야 한다. 탕에 몸을 담그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긴 낮잠으로 오랜시간을 헤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몽골 고비사막 160km 울트라 마라톤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