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끝자락, 추운 겨울입니다.
동지가 지났고 24년 일력도 운명을 다한 채 서쪽으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아직 한강은 얼지 않았으나 산책로는 고즈녁한 시골 길처럼 인적이 드뭅니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행인들의 어깨도 많이 처진 것 같고 아득하고 씁쓸한 웃음만 하얀 입김으로 새어 나오는 거 같습니다. 머리 위로 근원을 짐작할 수 없는 겨울바람이 지나갑니다. 아무리 많은 옷을 껴입어도 시베리아 벌판으로 떠나는 나그네처럼 그저 춥기만 합니다. 그래도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라 사물의 경계는 선명합니다.
마포대교 옆 제 2주차장은 그늘이 깊고 벌판을 휘도는 바람은 소백산 비로봉 같은 칼 바람입니다. 런닝복으로 갈아입는게 망설여 집니다. 이 엄동설한에 파카와 기모바지를 벗는다는 건 극기훈련을 억지로 체험하는 학생처럼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차된 차량들도 추수가 끝난 벌판에 버려진 탈곡기처럼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3시 10분. 성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옷을 갈아 입을 시간입니다. 귀마개를 차고 바람막이와 런닝 바지를 입고 열 손가락에 겨울 장갑을 끼었습니다. 장갑을 끼니 작은 새 한 마리가 손안에 들어온 느낌처럼 포근합니다.
추웠으므로 스트레칭 없이 바로 달렸습니다. 원효대교 쪽에는 햇살이 좋아서 그렇게 춥지 않았습니다. 땀을 내기 위해 속도를 올려봅니다. 한강철교 다리 위로 전동차가 덜컹거리며 지나갑니다. 전동차는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영화의 은하철도 999처럼 레일의 끝자락을 딛고 허공으로 솟아 오를 것만 같습니다. 재물만 있으면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다는 저 머나먼 은하계의 별을 향해서 말입니다.
어느새 이마와 머리에서 땀이 흘렀습니다. 장갑과 귀마개를 바람막이 왼쪽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맹견들에게 추격을 받는 것 처럼 허겁지겁 달린 결과입니다. 후배,동기,선배님도 잘 달리니 속도는 더욱 빨라집니다. 5.5키로 지점 동작대교 밑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바람을 안고 여의도로 출발합니다.
골인지점인 여의나루역 이벤트 광장에서 허리를 접고 가뿐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성취감과 보람은 대단합니다. 이벤트 광장은 2025년 숫자를 아로새긴 은빛 장식들과 기념품을 파는 비닐하우스가 보입니다. 젊은 연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들떠있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합니다. 해가 넘어가면서 사람들도 많아졌고 장식물도 어스름한 오후에 별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