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곳은 조금 특수한 환경이다. 공간의 특성상 회사 내에서 음식을 주문해 같이 먹기를 종용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같이'하는 것이라는 걸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웬만하면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선호하지 않고 외롭더라도 혼자 있기를 선호하며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만 돈독히 유지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무거운 걸 들거나 어려운 일을 할 때도 누군가 도와주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다. 꼬인 걸 수도 있는데 내가 조금 노력해서 할 수 있다면 그냥 혼자 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다.
이렇게 내면이 까칠하다 보니 제일 힘든 건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식대가 없다. 그런데 밥은 회사에서 먹어야만 해서 매일 배달 앱으로 메뉴를 주문한다. 그리고 '같이' 먹는다. 게다가 점심시간(=휴게시간)인데 사무실 전화기가 울리면 누군가 받기를 원한다.
나는 전화를 받지 못해도 용건이 있으면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걸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너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놈의 전화 때문에 사무실을 지키길 원하는 것 같다. 실상 잘 울리지도 않는다!
나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오늘은 무슨 메뉴를 시킬지 11시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11시 30분까지는 시켜야 식사를 제시간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 1은 무겁고 자극적인 음식, 양이 많은 것을 싫어하고 상사 2는 날것이나 고기 향에 예민하다. 나는 홍콩이나 유럽 등 현지 음식만 먹으면서 한 달을 여행해도 잘 지냈고 음식으로 고생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상종하기 싫은 게 '가리는 음식이 많은 사람'이다. 물론 음식을 가리는 건 기질일 수도 있고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그렇다면 가리는 음식이 많은 사람이 메뉴를 정하는 게 맞지 않나?
나는 점심시간에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제대로 시켜본 적이 없다. 매일 한식, 한식, 한식. 정말 지겹다. 나는 국 하나, 밥 하나만 있어도 식사를 잘하는 사람이라 반찬이 많이 딸려오는 배달 음식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음식물 쓰레기도 많이 나온다.
사실 회사에서 낯선 사람들이랑 먹는 밥은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주문해도 맛이 반감되기 때문에 메뉴 고민을 그렇게 오래 할 필요도 없다. 무난하게 시킨다. 내가 정말 짜증 나는 건, 아무도 메뉴를 정하는데 나서질 않아서 내가 선택지를 골라 물어보러 다닌다는 것이다. 아주 간혹 내가 나가서 먹거나 간단하게 때우고 싶은 날이면 미리 말을 하는데 직속 상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 일을 하다가 오너에게 식사 어떡하죠...? 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망울로 그 상황을 관망한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직무 유기를 한 것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직접적으로 뭐라고 하진 않지만 상사는 밥을 굶는다거나 내가 밥을 먹고 오기를 기다렸다가 나가서 먹고 온다는 게 너무 스트레스다.
나는 한국의 조직사회에서 '신입 = 밥을 시키는 사람'인 것이 당연시되는 게 너무 끔찍하다(난 신입도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 따위 개나 줘버린,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수직 관계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강요일 뿐이다. 상사들은 그저 손 놓고 가만히 내가 메뉴를 고르기만을 기다린다. 음식 두 가지를 정해 선택지를 내밀면 그것조차도 정하지 않는다. 후배들 눈치를 보는 건가 싶지만 자기 의사 표현도 못 하는 게 답답하고 한심할 뿐이다. 본인이 돈을 내고 먹을 음식에 대한 호불호도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