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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app Aug 20. 2022

좋아하는 것에서 직업으로의 변화(1)

그림만 그린 학창 시절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몰랐던 예민한 기질 때문에 , 고등학교 시절을 힘들게 보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는 것도,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선생님들의 강압적인 언행과 통제가 힘든 학생이었다. 나는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반이라는 이유로 혼나는 상황부터, 야자 시간에 화장실을 가면 매를 드는 담임 선생님까지. 성격이 무던한 친구들은 살금살금 화장실을 오갔지만 나는 화장실을 가다가 걸려서 맞아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수치였다. 내가 잘못한  아니면 혼나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년이 달라질 때마다 자퇴를 하겠다고 생떼를 부릴 만큼 학교 생활을 어려워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게 그림이었다. 초등학생 때 자발적으로 다닌 유일한 곳이 미술학원이었고 학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미술대학을 진학했다. 밥벌이? 직업? 집? 투자? 안정성? 미래의 삶은 전혀 생각도 안 하던 시절이었다. 작업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료값만 벌면 괜찮던 대학 시절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작업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일이었고 영어 성적이니 어학연수니 취업이니 다 남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을 도피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교수님들조차도 작가가 되는 방식을 일 순위로 두고 얘기했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만 열심히 그리면 됐지!라고 생각하던 나는 4학년이 되어서야 취업의 현실을 직면했다. 4년 동안 무언가 열심히 했는데 취업을 하려고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었다. 학교를 재밌게 다녔던 덕분에 성적은 좋았으나 성적은 기본적인 거라 신경 쓰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제야 다른 대학으로 편입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옮긴 학교에서는 작업에 대한 열의보단 영어학원, 자격증 취득에 몰두하지 야작을 웬만하면 안 한다고. 내가 우매했던 걸까.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나는 미술관 인턴으로 취직했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손과 몸을 많이 써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4학년 때 어렵게 따놓은 디자인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디자인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전시와 교육 보조,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홍보물 디자인, 전시실 청소, 전화 응대, 손님맞이, 주말 출근, 전시 해설 모두 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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