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나를 속일지라도

052 초역 채근담

by 무공 김낙범

채근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가 나를 속이는 것을 알아도 짐짓 모르는 척하라.
상대가 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더라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말고 태연하게 대하라.”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땐 고개를 갸웃하게 됐습니다.
누군가 나를 속인다는 걸 아는데도 모른 척하라고?
무시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라고?


그건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깊은 수행을 쌓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에게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이 마음에 남습니다.


누군가 나를 속였을 때
화를 내고 따지고 들면
그 순간은 통쾌할지 몰라도
정작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정에 휘둘려
스스로를 망가뜨린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분노는 때로 나를 보호해 주는 듯하지만
그 안에 오래 머물면 결국 내가 갇히고 맙니다.


그래서 요즘은,
때때로 모른 척하고
그저 태연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합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밀려와도
쉽게 휘둘리지 않으려 애씁니다.


채근담은 다시 일러줍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도리어 큰 효과를 얻는다.”


노련한 사냥꾼은
상대의 속임수를 알아채고도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적절한 순간을 기다렸다가
정확하게 대응합니다.


조용한 기다림,
차분한 관망,
그것은 무기보다 강한 힘이 됩니다.


모른 척하는 것이 비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
그 태연함 속에 숨은 단단함을
오늘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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