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초역 채근담
채근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물고기를 감상하며
취미를 즐기는 한가한 순간에도
그저 보고 즐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그 안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느끼거나 깨달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에게도 책과 깊이 만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책을 많이 읽으면 유식해질 것이다’라는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표지를 보고 고르지 않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저 쌓아 놓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머릿속에 쌓였어야 할 지식은 온데간데없고
왠지 모를 공허함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왜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저 글자를 ‘눈으로 훑었을’ 뿐이었습니다.
한 페이지를 끝내는 속도에 만족하며
문장의 의미를 곱씹는 수고를 게을리했습니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 마음과 의도를 알아채려 하지 않았습니다.
채근담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즐기면,
유교에서는 그것을 ‘반쪽짜리 학문’이라 부르고,
불교에서는 ‘현상만 보고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깨달음 이후로 저는 다독을 멀리하고, 정독을 가까이했습니다.
책 한 권을 책상 옆에 두고,
아무 페이지나 무심히 펼쳐 듭니다.
그리고 작가와 대화하듯 읽습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마음으로.
그렇게 읽다 보면
문장 속에서 작가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그가 전하려 한 메시지가 또렷하게 제 안에 스며듭니다.
그 순간부터 제 사색의 범위는 훨씬 넓어졌습니다.
글의 소재도 자연스레 생겨났습니다.
채근담의 말처럼,
무엇을 하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삶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꽃을 가꾸는 손끝에서,
나무를 심는 땀방울에서,
물고기를 감상하는 고요한 순간에서조차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비로소 우리 삶을 단단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