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날은, 만세력에 갑자(甲子)라고 적혀 있었다. 육십 갑자의 첫 번째 날. 세상의 바늘시계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새로 시작하는 순간. 어쩌면 누군가의 시선으로는 달력의 기록일 뿐이지만, 내겐 처음이라는 이름에 늘 묘한 힘이 있었다.
갑(甲)은 막 움트는 나무라 했다. 땅 속에서 기어이 고개를 내밀어 초록빛을 실현하려는 힘. 자(子)는 그 나무를 젖물처럼 기르는 물의 기운이라 했다. 결합된 둘의 모습은, 아직 여물지 않았으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생명의 서곡이었다.
나는 이 성정처럼 살아왔다. 늘 새로운 일을 벌이고, 늘 뭔가를 시작하려 했다. 여행 노트의 첫 장을 펼치듯, 책상 위 깨끗한 원고지를 마주하듯, 설레고 가벼우며, 동시에 조금 들떠 있었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너는 너무 쉽게 시작해. 그래서 쉽게 지치잖아.”
그 말이 늘 가슴에 걸렸다. 맞다. 갑자의 기운은 단단하면서도 들뜸이 있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강인하지만, 동시에 봄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하는 힘. 나의 젊음은 그렇게 자주 과열됐다가 식어버렸고, 그 열과 냉기 사이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새로움이란 시작의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싹이 돋아난 이후, 그것을 키우는 차가운 빗물과 예리한 바람, 가끔은 가혹한 여름 햇살까지도 모두 새로운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충동을 조금 더 길게 잡아두려 한다. 갑자가 가진 첫걸음의 에너지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이 도약하기 전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도록, 작은 호흡들을 중간중간 두려 한다.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며, 사소한 일정을 시간에 매달아 두는 것은 내겐 뿌리 같은 역할이다.
직장인에게 새 시작은 더 나은 기획서일 수도, 자영업자에게는 미약한 새 브랜드일 수도 있다. 은퇴자에겐 낯선 취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같다. 갑자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힘을 상징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물의 흐름과 나무의 생장이 서로를 살듯, 그 힘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시작은 언제나 내 편이다. 그러나 오래 가는 길은 내가 내 스스로를 다독일 때만 허락된다.”
갑자, 그 이름처럼. 오늘은 또 다른 시작이다. 그러나 이번엔 새싹을 넘어, 숲이 되는 시간을 믿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