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색 공원

강제로 멈춘 이유

이정제동(以靜制動)

by 무공 김낙범

멈추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냄비 근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두르고 채찍질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출근길에는 뉴스를 보고, 점심시간엔 이메일을 확인하고, 퇴근길엔 업무 전화를 받고, 잠들기 전까지 SNS를 스크롤합니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는 듯한 삶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나 또한 책을 쓰기 시작하며 하루 여덟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빨리 출간해야 한다"라는 급한 마음에 퇴고를 서둘렀고, 결국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직후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몸이 무너졌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과로입니다. 쉬셔야 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다음 원고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강제로 멈춘 이유

세 번째 책의 원고를 넘기고 나자, 몸이 이상하게 반응했습니다. 진단은 대상포진, 그리고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전신 통증으로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진통제에 의지하며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재활의학과 의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움직여야 살 수 있습니다."

처음엔 아픈데 어떻게 움직이라는 말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자, ‘죽더라도 침대에서 죽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을 옮기며 다시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정제동의 지혜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몸은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100미터만 걸어도 숨이 차고, 온몸이 아파 멈춰야 했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걸었습니다. 급하게 걸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아팠던 이유는, “빨리”, “더 많이”, “서둘러야 한다"라는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서두르지 않아도, 빨리 가지 않아도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갔다면 번아웃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는 이정제동(以靜制動)의 지혜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그 연습이 모여 지금은 하루에 15 천보 이상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고 다시 집필할 수 있는 힘을 길렀습니다. 급히 서두른다고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요함 속의 힘

이정제동(以靜制動)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북이는 느리게 움직여도 빠른 토끼를 이겼듯이, 천천히 행동하면서 꾸준히 가는 것이 오히려 더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그 행동은 냄비처럼 즉흥적 반응이 아니라, 가마솥처럼 깊은 사색 끝의 은은한 움직임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더 바쁘게, 더 많이, 더 빨리 움직여라."

하지만 이정제동의 지혜는 정반대입니다. "더 고요하게, 더 깊이, 더 천천히 움직여라."

물이 고요해야 바닥이 보이듯, 마음이 고요해야 진실이 보입니다. 고요함은 휴식이 아닙니다. 모든 움직임의 중심이자 힘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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