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식지공(不息之工)
강원도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이 태어난 고장입니다.
나는 가끔 이곳을 찾습니다. 메밀국수 한 그릇과 메밀전을 맛보고, 소설 속 풍경이 아직 살아있는 이 마을을 천천히 걷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물레방아 앞에 멈춰 섭니다.
쿵덕쿵덕
물이 떨어지고, 바퀴가 돌고, 소리가 퍼집니다. 오늘도, 어제도, 아마 내일도 다르지 않을 리듬입니다.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동네 처녀가 정을 나누던 그 밤에도, 물레방아는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감정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도 물레방아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갔겠지요. 그 모든 순간을 묵묵히 안은 채로.
사람은 떠나고, 이야기는 책 속으로 들어갔고, 계절은 샐 수 없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물레방아는 왜 여전히 같은 리듬으로 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앞에 설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매번 조금씩 다른 답을 얻기도 하지만, 사실은 늘 같은 답을 얻게 됩니다.
물레방아는 내가 다가가도, 내가 등을 돌려도, 같은 속도로 같은 소리를 냅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그저 제 할을 묵묵히 해 낼 따름입니다.
우리의 삶도 저 물레방아를 닮아야 하는 건 아닐까?
크게 흔들리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어제와 다르지 않게 돌아가는 리듬. 그것이 결국 시간을 이기는 힘이 아닐까?
눈에 띄는 성취도, 화려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저 멈추지 않는 꾸준함은 그야말로 쉬지 않고 일하는 불식지공(不息之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평의 물레방아는 오늘도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쿵덕쿵덕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