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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Dec 15. 2020

애월한담 장한철산책로

바다를 표류해 최고의 문학으로 남다-장한철선생표해기적비

어제 오늘 제주는 추운 겨울이 느닷없이 찾아 들었어요. 한라산에는 눈 소식에 교통 통제 소식, 그리고 급작스럽게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 소식에 맘껏 우울하네요. 우울감을 풀어줄 뭔가가 필요했어요. 지난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정말 제주다운 바다 빛을 뽐내는 한 장을 찾았습니다. 

지난 가을, 깊게 물들어가는 가을빛이 보기 좋았던,  이미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코스가 되어버린 유명한 이곳, 애월 한담공원이에요. 코로나19에도 가을빛의 손짓을 이기지 못했는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삼삼오오 산책로를 거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억새처럼 일렁였었지요. 푸른 바다에 감동하고 이름 난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가 빛나는 휴일이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들었어요. 이곳을 찾는 관광객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조차 무심히 지나치던 ‘장한철선생표해기적비’! 그냥 스쳐 지나기에는 너무나 한 눈에 쏙 들어오는데도 말이죠. 관광가이드 중 어느 한 명 자신의 관광객들에게 ‘장한철선생표해기적비’에 대해서 알려주는 분이 없더군요.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제주 사람이 들여다 본 제주, 오늘은 장한철 이야기에 푹 빠져도 좋을 것 같은 겨울날입니다. 

애월한담 장한철 산책로


장한철 선생은 1744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한담에서 태어나 조선 후기 대정현감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문인이었습니다. 

 1770년 향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한양에서 열리는 회시에 응시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해요. 이에 마을 어른들과 3읍에서 노자를 마련해 주어서 한양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렇게 마을 어른들의 마음을 한껏 안은 채 떠난 장한철과 29명의 일행은 1770년 12월 25일에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의 호산도에 표착하게 됩니다. 그후 안남(베트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국 상선을 만나 청산도를 거쳐 1771년 5월 제주에 돌아옵니다.         

장한철과 그 일행 29명이 함께 표류한 일을 기록한 책이 바로 ‘표해록’이지요. ‘표해록’은 개인의 경험을 서술한 문학적인 글이면서 당시의 해로와 해류, 계절풍의 방향을 알 수 있는 해양지리서로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네요. 그뿐만 아니라 제주의 신화와 전설, 일본 오키나와의 태자 전설 등을 담고 있어 신화 전설집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표해록'은 '해양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며 2008년 제주도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장한철선생표해기적비


 ‘장한철선생표해기적비’는 당시 돛배를 형상화한 모습이라고 해요. 지금이라도 곧 저 푸른 애월 바다로 밀려 나아갈 듯한 기분이 드네요. 이 기적비는 2011년 장한철 선생의 8대손이 세웠어요. 2013년에는 한담과 곽지해수욕장을 잇는 1.2km의 해안길을 '장한철 산책로'로 이름 짓고 애월읍에서 ‘표해록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답니다. 올 12월 완공 목표로 산책길을 따라 자리한 카페들 사이 마을 안 장한철 생가 터에 ‘장한철 표해록’ 기억 공간도 준비 중에 있다고 하니 또 기대가 되네요. 

애월 한담의 바다가 더 아름다운 것은 제주의 역사와 문학이 함께 빛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월 한담 공원을 찾는 이들이 최고의 해양 문학인 표해록과 장한철 선생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언젠가 이곳을 찾는다면 바다가 품은 작은 이야기를 떠올려 주시겠죠? 




*이 매거진의 글은 제주시정 홍보지 <열린제주시>의 '일과 열정'란과 제주시블로그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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