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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Dec 18. 2020

식비의 4단계

생활비가 오면 먹는 게 달라졌다

그해 겨울 제주에 내려온 후 우리 남매들만의 소꿉놀이 같은 자취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학생인 나와 고등학생이었던 작은 오빠, 그리고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 방 2개짜리 자취방에 부엌이 달린 집이었다. 긴 마루를 사이에 두고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가 사시던 창문으로 들이치는 따듯한 햇볕이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 우리 큰아들래미가 19살! 자기는 다 컸다고 독립도 자신하지만 옆에 두고도 늘 걱정이 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아버지는 우리를 이 제주에 보내고 얼마나 속을 끓이셨을까? 이제서야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살림을 맡고 있던 것은 언니였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했던가? 언니는 큰딸이라는 이유로 어려운 형편이 되어서도 대학을 간 큰오빠와는 달리 당분간 우리들을 돌봐야 했다. 이 점은 지금까지도 우리 남매들이 언니에게 빚진 느낌으로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아버지도 형편이 좋아져서는 당시 대학을 못 보내 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학비로 한꺼번에 언니에게 내놓으시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언니는 엄마가 온 집안에 숨겨 놓는 간식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이 자취 생활에선 무엇이든지 꽁꽁 숨겨 놓아 우리가 절대 찾아내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항상 모자란 생활비였지만 간혹 과자를 사다 놓았는데 그 작은 집에 숨길 공간이 어디 있다고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는 것이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당연히 이 먹는 것을 장악한 언니의 파워가 가장 셌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많이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잘 지내서 고맙다고, 지내기는 괜찮냐고 걱정과 당부,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구 뒤섞인 장문의 편지와 함께 생활비가 오면 언니의 씀씀이가 조금 커진다. 돼지고기도 좀 사다가 구워 먹고 과자도 사다두기도 한다. 도시락 반찬은 또 어떤가? 통통한 오징어포 볶음과 소시지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생활비 도착 1주는 화려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2주째에 들어가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반찬이 좀 간소해지고 자꾸 먹던 게 올라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이었다. 물론 이때부터는 라면을 끓여 먹는 경우가 조금 늘어나게 된다. 쌀은 도시락을 싸야 했기에 적당히 아껴먹고 그 자리를 라면이 대신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락 반찬도 오징어포 대신에 얇디얇은 쥐포 볶음이 주가 된다. 오징어포나 쥐포나 뭐가 다르냐고 비슷하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 차이는 크다. 얇디얇은 쥐포는 좀 비닐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비린내도 좀 싫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의 요리 솜씨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그 기억 때문인지 난 지금도 쥐포 볶음을 안 먹는다.


3주째는 그야말로 긴축이다. 이때부터 라면이 주식이 된다. 지금처럼 라면 종류가 다양했던 것도 아니고 사실 라면을 주식으로 먹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4주째 들어가게 되면 언니가 준비하는 게 있다. 바로 밀가루! 이제는 별미로나 먹을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다. 라면의 3주와 수제비의 4주! 더 힘든 건 라면의 3주였다. 라면의 3주는 영 지날 것 같지 않은 암담함도 느끼게 했다. 반면에 수제비의 4주는 이제 좀 견디면 다시 화려한 1주가 찾아오리라는 기대감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주인 할머니의 호떡이다.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신지 자주 싸우시고 또 금방 사이가 좋아지시곤 했다. 할머니는 시장 앞 한쪽에서 호떡과 핫도그 장사를 하셨었다. 장사를 접고 집에 오시면 어김없이 남은 호떡과 핫도그 봉지를 방안에 들이밀어 주셨다. 그게 또 우리의 간식을 대신해주곤 했다. 얼굴만큼이나 컸던 꿀호떡과 쪼끄만 소시지가 겨우 담겨있는 저 큰 핫도그. 사실 처음에는 무지 반가운 간식의 역할을 다했으나 겨울 내내는 힘들었다. 제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이렇게 자주는 곤란한 것이다. 제발 할머니의 호떡과 핫도그가 완판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빌었던가.


그렇게 1년, 우리 남매들의 소꿉장난 같은 자취 생활은 철없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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