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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Dec 20. 2020

아들내미 2호의 학교는 한라산에 있다

폭설과 멧돼지, 그리고 부엉이....

 한라산에 눈이 많이 내렸다. 예전 같으면 한라산에 폭설주의보가 내려도 생활권인 시내는 아무 불편이 없는지라 그리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날씨가 좀 수상하면 한라산의 상태는 어떤지가 먼저 신경이 쓰인다. 바로 고등학생인 아들내미 2호의 학교가 한라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다. 설경의 한라산, 눈꽃의 한라산, 눈썰매의 천국 한라산이었던 것이 이제는 눈 때문에 아들을 데리러 갈 수는 있을까, 아들의 기숙사는 춥지 않나, 급식실까지는 또 이 눈 속에 어떻게 가고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의 한라산으로 변해 버렸다.


 아들내미 2호는 어릴 때부터 고집이 무지 셌다.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그 자리에 붙어버린 듯 꼼짝을 않고 뭉쓰기(*떼쓰다의 제주어) 일쑤였다. 어느 순간에 마뜩지 않음으로 변해서 고집을 부리는지 그 맥락도 애매할 때가 많았다. 거실에서 온 식구가 잘 쉬다가 문득 사라진 아들내미 2호를 찾다 보면 안방에 톡 들어가서 벽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들내미 1호와 남편, 그리고 나는 저 아이가 또 뭐에 기분이 틀어졌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바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로서는 어느 지점에서 저리 꽁 해진 것인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렇게 뭉쓰기 시작하면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제 풀에 풀어지기를 기다리는 게 제일이었다. 저 고집을 어쩌누, 저 고집에 사춘기까지 오면 그 노릇을 어쩌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커가면서 성격이 다소 풀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제법 딸 같은 아들내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 못 할 고집스러움은 공부 쪽으로 꽂혀서 아들내미 1호가 진즉에 요리로 진로를 정한 것처럼 아들내미 2호는 과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지금의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 올 1월, 입학 전 적응 캠프로 처음 학교에서 2박 3일을 지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폭설이 내렸다. 차량 통제로 제주대학교 입구까지는 자가용으로 겨우겨우 올라가고 그 이후로 학교까지는 2박 3일 짐을 넣은 캐리어를 들고 체인을 채운 버스로 이동했다.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서 또 학교까지는 푹푹 빠지는 눈길을 또 걸어서 내려가야 하는 험난함, 그 자체였다. 신고식을 제대로 톡톡히 치른 셈이다. 2박 3일간 아들내미 2호와 신입생들은 간식도 시내에서 공수받지 못하고 학교 내에 구비되어 있던 비상식량으로 때우면서 한라산 눈 속에 갇혀 버렸던 거다.

아들내미 2호의 학교 입구


 아들내미 2호의 학교에서는 밤 7시-9시까지 학부모 사서 봉사를 할 수 있다. 일을 하고 있어서 낮이면 못했을 봉사였는데 잘됐다는 생각으로 신청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라산 중턱을 오르내린다. 여름까지는 몰랐는데 늦가을에 접어들고 특히나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다 보니 이곳이 한라산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사건들도 생긴다. 오다가다 노루를 만나는 건 몇 번 경험을 했지만 어느 날은 멧돼지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밤에 한라산 중턱을 운전할 때는 과속하지 않는다. 가끔씩 불 빚에 뛰어드는 노루가 있어서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날도 온통 깜깜해진 구불구불한 산길을 천천히 운전하고 오는데 길옆으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노루구나 조심히 천천히... 잉? 근데 이 노루는 왜 저렇게 엉덩이가 낮지? 아기 노루인가? 하는 순간 획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는 그것은 노루가 아닌 멧돼지였던 거다. 세상에 멧돼지를 만나게 되다니.... 차를 세워두고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녀석도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 사진, 사진을 찍자. 놀라서 초점마저 흐릿한 멧돼지의 사진은 그렇게 얻게 되었다. 내가 이리 놀랐는데 아직 아기인 저 녀석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 어째 이 밤에 어미도 없이 이 위험한 길가에 나와 다니는지, 어미는 제대로 만나기나 할지 걱정이 몽글몽글....

흔들린 애기 멧돼지

 아들내미 2호에게 멧돼지 얘기를 했더니, 에이 뭐 그런 거에 놀랐냐며 사진 하나를 보내준다. 받아보니 부엉이 사진이다. 급식실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다 보니 옥상 한쪽에 부엉이 녀석이 날아가지도 않고 멀뚱히 보고 있길래 찍었단다. 여름에 만나는 꼽등이는 그 크기가 아주 우뚝하고 영어 듣기 평가 때마다 들려오는 한라산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우렁차기가 온 골짜기를 채우고 남음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동물들은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웬만해선 사람들을 겁내거나 하지 않는다면서 이게 한라산 클라쓰 아니겠냐며 물결을 끝없이 붙여 보낸다. 

좀 무섭거나 혹은 어리벙벙해 보이는 부엉이

 지난주 금요일 기말고사를 끝내고 집에 온 아들내미 2호. 짐을 싸들고 집에 내려오는 내내 눈 얘기로 바쁘다. 폭설 내리던 3일이 기말고사 기간이었는데 펑펑 내리는 눈에 아이들이 정신을 놓고 간식으로 챙겨간 음료수를 눈에 파묻었다가 시원하게 꺼내 먹은 이야기며 급식실 귤 컨테이너에서 귤 몇 개를 가져다 눈밭에 묻었다가 먹은 이야기, 제설차가 학교 운동장이며 주차장, 입구 등을 돌아다니길래 어디 시나 도에서 보내준 건 줄 알았더니 학교 자체적으로 구비하고 있던 제설차여서 역시 한라산 학교라며 놀랐다는 이야기 등등.... 아들내미 2호에게 한라산은 참 많은 추억거리가 되고 있구나 싶었다.  

 다음 주는 코로나로 다시 1주간 원격 수업이다. 집에서 푹 쉬면서 여유를 즐길 만도 하건만 하루 이틀 지나면 확실히 학교가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며 정상 등교를 꿈꾼다. 그래도 한라산이어서 천체관측 동아리 활동을 할 때는 새까만 밤에 얼마나 많은 별을 볼 수 있는지 모른다며 등교를 기다린다.


 아들내미 1호는 그런 동생 아들내미 2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 쟤 저렇게 공부만 하다 보면 사회성에 문제 생겨. 어떻게 공부만 하고 사냐?" 

 아들내미 2호는 또 형인 아들내미 1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 아무리 조리가 전공이라도 형처럼 공부 안 해도 될까?"

  흠... 엄마는 너희 둘 다 이해가 안 될 때가 훨씬 많단다. 중요한 건 둘 다 자신들이 결정한 그 길을 힘들고 오랠지라도 뚜벅뚜벅 걸어가 주면 좋겠다. 그런 너희들에게 한라산의 맑은 정기가 함께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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