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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Dec 24. 2020

차를 바꿨다.  

사실 나는 차 바꿀 생각이 없었다.

 아들내미 1호가 태어나면서 남편은 타고 다니던 세**를 처분하고 처음 출시되던 무* 스**를 마련했다. 당시 나는 장롱면허증을 보유하고 있을 뿐 기동력은 가지지 못한 채였다. 차에 대해선 그리 관심도 없었고 기능적인 면이나 디자인에도 보는 눈이 없었다. 그저 어린 아들의 접종일에 기동력만 확보되면 그만이었다. 당시 첫 출시된 무*스**는 꽤나 이웃들의 관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짐칸 부분에 뚜껑을 해 단 것도 어떻게 했냐고 옆차 운전자에게 질문을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 남편은 슬쩍 기분이 좋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차 1대 시대는 5년 여를 지속하게 된다.


 그 사이 아들내미 2호가 태어나고 1,2호는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시골 학교부터 시작되다 보니 초반기에 버스로 다녀야 했는데 중요한 건 내가 버스 냄새를 못 맡는다는 거였다. 버스 냄새에 멀미가 엄청나서 일보다 왔다갔다 하는 데에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작은 중고차 한 대를 가지게 되었다. 작지만 조금 높은 외형에 꼭 커브를 돌다가 넘어가지 않을까 잠시 잠깐 걱정이 되던 까만색 아**! 바야흐로 우리 가족 차 2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장롱 속 깊이 보관해두던 운전면허증이 드디어 그 영롱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해안 도로를 한 번 돌아본 걸로 도로 주행 완료! 무작정 끌고 나갔다. 온 가족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짧은 시내 주행에 대부분 뻥 뚫린 외곽도로를 타는 지라 어찌어찌 며칠 무사히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날은 추적추척 비가 내렸다. 운전하고 처음 맞는 비 날씨, 남편의 신신당부에 호기롭게 답하고는 출발하였다. 출발하자마자 주황색 불빛이 깜빡깜빡~~ 응, 기름을 넣어야겠군. 다행히 집을 나서면 바로 주유소이다. 자연스럽게 주유기에 차를 댔다. 직원 분이 빤히 쳐다본다. 초보 운전이라고 써 놓지도 않았는데 참 귀신같이 초보를 알아보시는구만.... 혼자 생각에 나도 쳐다보았다. 초보 운전자라고 기가 눌리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다.

"주유구 열어주세요~~~" 

!!!! 아뿔싸, 주유구 열기를 기다리는 거였구나. ㅎㅎ 혼자 웃음을 참으며 주유 레버를 올렸다.

"주유구 열어주세요!"

다소 뾰족해진 직원 분의 말투! 오잉? 이게 아니었나? 레버를 찾다보니 이것저것 여러가지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나씩 올려봐도 주유구가 열리지 않아 민망해 하는 순간 점원 분이 친히 오셔서 쓱 훑어보고 알려준다.

부끄럽다. 여지없이 초보자 티가 나 부럿다. 얼른 주유 마치고 가 버려야지. 주유가 끝나고 쌩하니 빗속으로 내달렸다. 왜 진작 레버 종류를 알아두지 않았던가. 쪼그라든 마음 속으로 차락차락 빗소리가 들이친다. 잊자 잊어. 근데 경차라서 그런가 빗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리는구나. 무슨 일인지 뒤차가 빵빵 클락션을 울려댄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도로에서 옆으로 지나가며 옆차의 운전자가 뭐라고 한다. 참 나 원. 초보 운전자라고 또 뭐라고 하는구만. 아니 당신들은 초보 시절이 없었냐구요. 좀 답답하더라도 응? 느긋하게 봐주는 여유가 있어야지 말이야, 사람들이 말이야 응, 너무하잖아!

 혼자 분기탱천해서 온갖 탓을 하고 있을 때 운전석 뒷쪽으로 공기가 수상하다. 쌩한 바람인 듯, 웬 물기인 듯. 뭐지 이 쎄함은? 룸미러를 힐끔, 뭐 별일 없군. 깨끗하게 잘 보이고. 근데 왜! 그렇게 빵빵대냐고. 그러다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듯한 느낌! 비가 오는데 저렇게 깨끗하게 후방이 보일 수가. 잽싸게 지나치던 한 중학교 쪽에 차를 댔다. 섣불리 내릴 수가 없다. 저 차들이 다 지나가면 살짝 내려보자.


 그랬다. 아까 주유 레버를 찾느라 이것저것 눌렀을 때 트렁크가 봉인해제 된 것이다. 경사를 타고 내려오면서 봉인해제 된 트렁크 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다가 급기야는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우렁찬 만세를 불렀고 그걸 다른 운전자들은 알려주려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활짝 열린 트렁크 문 사이로 빗소리의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와 물기를 선사했던 걸 뒤늦게야 알아챘다. 혼자 앉아 있어도 창피했다. 그날 이후로도 밤에 까만 차를 전조등 켜는 걸 잊고 운전을 하다가 골목을 나오는 상대방 차를 놀라게 한다거나 하는 실수들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나는 모*으로 바꿔서 10년을 타고 있고, 남편은 오래된 무*스**를 프***로 바꿔와서는 내내 새차 사자고 노래를 불렀다. 딱히 불편함 없이 지내던 터라 나는 온갖 핑계로, 때로는 무시하는 전술로 새차 사자는 공격을 방어해왔다. 그렇게 견고했던 나의 방어벽은 의외로 쉽게 무너져 버렸다. 바로 아들내미 2호의 기숙사 통학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짐과 책을 넣은 꽤 무거운 짐들도 그렇거니와 한라산을 오르기에는 눈이 없어도 내 작은 모*으로는 힘이 꽤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결정적 한 방, 올해 눈이 많을 거라는 예보!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을 찾질 못했다. 그리고 새차가 나온지 2주 정도 지나자마자 때마춰 내린 폭설, 남편은 자신의 선견지명에 으쓱했고 나는 그래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명분을 채워줄 수 있었다.

 

 새차를 타고 처음 아들내미 2호 학교의 사서 봉사를 다녀오던 밤, 한참을 설명서와 씨름을 해야했다. 처음 아**의 주유구를 찾을 때의 그 10년 훨씬 전의 그 느낌이 오버랩되는......그때보다 훨씬 많아진 버튼들, 분명히 쉽고 편리하게 저리 만들어 놓았을텐데 그걸 왜 이리 어려워하는 것이냐? 스스로를 향해 끌끌 혀를 찬다. 그때처럼 왜 진작 기본적인 걸 둘러봐 놓지 않았을까?


 사는 것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그저 잘 살아질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기본기를 무시하고 큰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아둥바둥 대다가 실망하다가 또 잊어버리고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더 나은 편리한 기능이 있음에도 그저 익숙한 것에만 의지했던 것처럼 고작 주어진어설픈 재능 한 줌으로 생활을 채우지 못하고 때우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저 수 많은 버튼들을 공부하면서 내 삶의 안내서는 어떤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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