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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Dec 12. 2020

아들의 미역국,배신의 서막을 올리다

엄마, 김칫국 마시다!

 아들내미 1호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처음 시작은 의자를 받치고 올라서서 엄마의 설거지를 돕는 것부터였다. 비록 물바다가 되어 손이 더 가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효자를 낳은 것이라 내내 뿌듯해했었다. 집에서도, 집 근처 무료 프로그램에서도 음식을 만드는 데에는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다니곤 했다. 그러더니 중학교에 가서는 푸드 아트 동아리를 내내 하더니, 결국 고등학교도 조리과를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아들내미 1호의 진로는 요리로 방향이 잡혔다.  사실 뭐, 그냥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었으나 어쩌겠는가? 지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는 어설픈 생각을 가진 나와 남편은 애매하게 허락을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울 아들내미 1호는 먹는 것과는 좀 인연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돌잡이 때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연필을 딱 잡아서 온 가족이 탄성을 지르며 공부 좀 할 건가 하는 순간, 그 연필로 옆에 있던 떡을 정확히  찍어 올려 먹어서 잉? 반전을 보여주던 녀석이었다. 조금 커서는 상을 짚고 차려진 음식들을 보다가 밥 위에 포도, 포도 위에 초콜릿의 오묘한 조합을 맛나게 먹으며 삼촌, 이모들을 진즉에 놀라게 하여 그 일이 지금도 회자되게 만든 녀석이었다. 한참 온 집안의 서랍을 열어젖히고 다닐 때는 엄마의 스틱형 파운데이션을 아주 기름지게 먹어 놓고 탈이 생길까 봐 게워내게 할 요량으로 소금물을 진하게 해서 먹였더니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꿀꺽꿀꺽 삼켜버리고 그대로 아무 일도 없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도 남긴 녀석이다. 물론 그 이후 며칠간 아들내미는 황금똥을 누다 못해 티슈로 응가를 닦을 때마다 끊임없이  파운데이션으로 엉덩이를 뽀얗게 커버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런 아들내미 1호가 커서는  엄마의 생일이 되면 미역국을 끓여주는 것으로 선물이고 뭐고  한꺼번에 퉁치기도 했다. 내심 아들내미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받아먹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게 맞는 말일 게다. 


 작년 내 생일 즈음이었다. 며칠 있으면 생일인데 아들내미의 문자 한 통이 띠릭 도착한 것이다.

-엄마,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소고기랑 커트 미역 좀 사다 놔줄 수 있나요?-

흐흐흐, 드디어 그날인 것인가! 녀석 일찍도 준비를 하시는구만. 내 모르는 척 준비를 해 주리라.

-알안(알았어). 그거 두 개면 돼?-

-ㅇㅇ, ㄱ ㅅ(응, 감사)-

 후훗. 기분 좋게 재료들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원, 이벤트를 열어도 꼭 이렇게 다 눈치채게 어설프게 짜 놓아서 참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가기도 민망하게 만드는 건 내력인가 보다. 한 이틀 기다리면 아들내미의 미역국을 맛볼 수 있겠구나!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늦게야 집에 온 아들은 재료들이 잘 있는지 확인을 한다. 제법 이럴 때 보면 치밀하단 말이야 흐흐흐..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부엌이 소란스럽다. 아들내미 1호가 벌써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아들은 이번 엄마 생일을 좀 이르게 착각하고 있나 보다. 이틀 후인데 오늘로 알고 있구나. 그래서 어제 그렇게 급하게 재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구나. 그래 하루 이틀 정도야 뭐. 챙겨주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럼 내가 지금 이 시점에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방에서 아들이 부를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학교도 가는 날인데 새벽부터 준비하는 아들이 고마웠다. 역시 울 아들내미 1호는 효자야. 어릴 때 설거지할 때부터 진즉에 알아봤지. 암, 그렇고 말고. 누구 아들인데~~. 줄줄이 햄도 살짝 굽는 모양이다. 고소함이 남다르다. 얼추 다 되어갈 시간인가 싶은 그때, 드디어 아들내미가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갔다가 놀라야 한다. 미리 김을 빼서는 곤란하다. 이제 막 일어난 듯한 포즈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응 왜? 어? (몰랐다가 놀란 척하며) 이거 뭐야?"

"엄마, 그 우리 도시락 있지 않나? 보온 도시락?"

응? 보온도시락? 아니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어 도시락 있기야 하지. 왜 뭐에 쓰려고?"

"응 엄마, 그럼 그 도시락 좀 줘봐 봐."


뭔가 불길하다. 주섬주섬 보온 도시락을 꺼내 주었다. 아들은 1단엔 밥을, 2단엔 소고기 듬뿍 미역국을, 3단엔 올망졸망 줄줄이 햄을 싼다. 작은 통에 과일까지 살짝 ~. 저 도시락은 도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이거 뭐냐? 학교서 어디 가냐?"

나도 모르게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아들내미 도시락을 내 생일상으로 착각한 게 조금은 억울하다. 그래도 지 도시락 스스로 싸는 아들에 만족하자, 하는 순간 

"어, 엄마 이거 **이 꺼. 오늘  **이 생일이라서 내가 준비했지."

허걱. **이.... 아 내가 **이를 잊고 있었구나. 아들이 여자 친구는 아니고 여사친이라고 우기지만 왠지 울 아들내미가 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던  **이.  그 **이의 생일 도시락을 챙겼단다. 엄마한테 재료를 사다 놓으라고 하고 그  재료로.

"아 그래? 그렇구나. 잘했네. **이는 좋겠다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신이 나서 등굣길에 나서는 아들내미의 뒷모습을 내다본다. 짓. 좋을 때다. 야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김칫국을 마시다니 우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이틀 뒤 내 생일에는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 하는 복잡한 마음. 나중에 여자 친구 생기고 결혼까지 하면 저 아들내미가 어떨 건고? 급기야 먼 미래의 일에 지레 걱정 닮지 않은 고민에 아침 시간을 보냈다. 에휴 그래 친구 생각하는 마음이 예쁜 거로 인정하고 아주 살가운 녀석이라 말해주자. 


그리고 띠리릭 도착한 카드 사용 안내 문자!

-파***트  29,000원-

케이크까지 준비하고 아주 그냥 풀코스구나!  

겨우 다잡았던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엄마 생일엔 어떻게 하는지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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