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매품 책날개에 쓰여 있는 글이다. 써 놓고 보니 또 부끄러워진다. 이래서야 어디 뭐라도 좀 쓸 수 있을까? 지난 11월, 나의 책이란 걸 갖게 되었다. 한 도서관에서 지원 사업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책 만들기 수업의 완성품이다.
후배가 신청하라고 알려주었고 그날따라 일찍 나가야 해서 인터넷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신청했다. 저녁형 인간인지라 그렇게 일찍 꼼지락 대기란 참 드문 일이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수업을 받고 한 꼭지씩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프로그램 결과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가볍다 못해 너무 엉성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후배가 전화와서는 신청 했냐고 사뭇 재촉해댔다. 심드렁하게 신청하고 나갈 준비하고 있다고 하자 대박이라고, 잘 됐다고 아주 신이 났다. 무슨 일이길래? 이게 뭐 그렇게 호들갑 떨 프로그램이었던 건가? 의문스러웠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접속도 힘들었다고, 도서관의 담당자들도 의외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신청 오픈 2-3분 만에 마감이 됐다고, 후배는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그 와중에 후배와 나는 신청에 성공한 것이었다. 뒤늦게 내가 큰 일을 해냈구나 싶었다.
프로그램은 곧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비대면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두둥!! 7월부터 11월까지 총 20회기, '독자에서 작가로, 생각에서 세상으로'를 모토로 한 독립출판물 책 만들기. 각자의 책을 한 권씩 완성하는 과정이란 걸 그제야 확인했다. 다른 참가자 분들은 벌써 어떤 주제로, 몇 꼭지의 글을, 어떤 디자인으로 할 것인지 감 잡고 있었는데 나만 멀뚱멀뚱. 나는 그동안 어떤 글을 쓰고 싶었던 걸까? 진짜 고민이 없었구나! 자괴감이 또 덮쳐 온다. 그래도 강의를 맡아주신 작가 선생님의 응원과 독립 출판 관계자 분들의 유용한 도움으로 어찌어찌 진행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유독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지점에 대한 기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기억의 근간에는 가족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꽤 두텁게 자리 잡고 있음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을 지낸 강원도 철원을 그렇게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음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나였던 것. 그래서였을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평이하다고 여길만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쫓아가는 것이 즐겁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지금도 힘든 기억을 즐겁고 따뜻한 기억으로 슬쩍 덮고 넘어가려고 한 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열여덟 꼭지의 짧은 글들이 어리숙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이걸 정말 책으로 묶어도 될까 싶은 마음이 컸다. 그나마도 10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는 뭐 하나 손을 까닥일 수 없이 멍하게 시간을 보내느라 더 이상 글 쓰는 건 포기 상태로 내팽개쳤다.
그때 독립출판 관계자 분들이 우리의 목표는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자꾸 옆구리를 찔러댔다.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나의 책은 그리 거창할 거라는 기대가 민망한 상태였다. 그러니 욕심 없이 묶기라도 하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마음이 또 변하기 전에 빨리 진행하자. 다시 퇴고할 생각 없이(다시 퇴고했으면 아마 묶어내지 못했을 거다.) 표지 디자인과 페이지 정리 등 매무새를 잘 가다듬지도 못한 채 보내버렸다.
'어쩌자고 글쓰기 1'의 목차
그렇게 일주일 후 나는 나의 책을 갖게 되었다. 내 책을 갖는 것을 꿈꾸기는 했으나 이렇게 느닷없이 가질 계획은 아니었다. 부끄러움 하나 더 얹은 듯하여 전시된 내 책 앞을 스치듯 어슬렁댄다. 내 책을 바로 마주 보기가 이렇게도 어색하다니. 그러면서도 은은한 보라색 표지의 책이 조금은 이뻐 보인다. 생각보다 책답다는 마음도 한구석에 몽글몽글 자리 잡는다. 사람들이 책을 내는 이유가 이런 느낌이겠구나. 그래서 그렇게들 열심히 자신들의 시간을 쓰고 묶는 것이구나. 책을 안 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딱이었다. 내가 그 맛을 알아버렸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예기치 못함의 연속이었지만 지금도 가끔 들여다보는 4개월이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책 하나 묶는 걸 시도라도 할 수 있었을까? 가끔은 계획 없이 일상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 몸이 배배 꼬이고 얼굴이 화끈대는 부끄러움이 생각지 못한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게 인생인가 보다. 그 맛에 또 알 수 없는 삶에 용기 내어 다시 몸을 맡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꽂이에서도 홀로 빛을 내는 건 어리숙한 내 책이다. 책의 열렬한 독자는 오늘도 혼자만의 만족과 뿌듯함을 뻔뻔스럽게 만끽한다. 비매품이면 어떤가? 또다시 <어쩌자고 글쓰기> 시즌 2를 소심하게 구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