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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Jan 20. 2021

사인(sign)의 기억

아빠는 왜 사인을 만들어주셨을까?

 글쓰기 주제를 확인한 녀석들의 표정이 심난하다. 아마 오늘은 녀석들의 유쾌 발랄한 글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는 살짝 밀당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은근한 승부욕을 살살 불러 일으켜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때론 그것이 가나다 초콜릿 한 조각이기도 했고 어느 땐 상어 맛 사탕이기도 했다. 하필 오늘은 그 어느 것도 없다. 난감하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을 땐 기대감에 호소하는 수밖에. 약간의 연기력을 장착한다. 


"자, 오늘은 ....”

아이들의 눈이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흠... 계획대로 되고 있어. 

“재밌는 생각을 표현한 친구들에게는.......선생님 사인을 해주겠다.”

생기가 돌던 아이들의 눈동자에 의문의 물음표 하나 떠오른다. 

“선생님 사인을 뭐 하러 우리가 받아요?”

뜻밖의 기대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 억울한지 뿌루퉁한 반문이 돌아온다. 

“이것 봐봐. 너희들, 선생님 사인 안 받아봐서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없네. 자, 선생님 사인의 비밀을 알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써 보도록. 아마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걸?”

의심쩍은 눈길을 주고받던 아이들은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는지 하나 둘씩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무 책상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빙글대며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어느 아이는 한참이나 바다 속 탐험에 골똘했고 또 다른 아이는 상상 속 괴물을 쫓느라고 바쁘다. 얼마나 흘렀을까? 


“다 썼어요. 선생님, 사인요.”

“그래? 다 썼다고 선생님 사인을 받을 수는 없지. 얼마나 재밌는 생각인지 먼저 봐야겠지?”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가는 내 앞에서 녀석이 긴장했다. 과연 통과해서 사인을 얻을 수 있을까? 뒤이어 줄을 서는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음. 선생님은 이 부분이 정말 재밌는데? 통과!”

“이야!!! 빨리 사인해 주세요.” 

“이쪽으로 와서 너만 봐야 돼. 뒤에 애들이 눈치 채면 안 되니까. 자 이렇게, 요렇게 보면 어때? 뭐가 보여?”

“뭐요? 어, 어? 우와 보인다! 이야, 어떻게 이렇게 되지? 선생님 사인, 진짜 대박!”

이쯤 되면 오늘 글쓰기는 성공이다. 처음 검사 받는 녀석이 이 정도로 맞장구를 쳐주면 그 뒤의 아이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서 써오기 마련이다.     


 내 사인의 비밀은 단순하다. 가로로 멋지게 서명한 사인을 뒤집어서 세로로 보면 나의 이름이 흘림체로 비쳐 보인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사인은 나름 오랜 연구의 결정체이다. 그것도 아버지의 연구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왜 사인에 마음이 꽂혔던 것일까?

 아버지는 그렇게 살갑고 정다운 분은 아니셨다. 그래도 어린 나와 아버지는 김일의 박치기를 함께 응원했고 동물의 왕국에 나온, 물 위를 희한한 폼으로 뛰어가는 목도리 도마뱀을 보며 같이 웃었다. 아이들과 거북 땅따먹기를 하면서 내가 이만큼 다른 아이의 땅을 한꺼번에 접수할 때면 건너다 보시다가 중국의 장개석과 모택동의 이야기로 중계하시며 은근 즐거워 하셨다. 물론 장개석이 누군지 모택동이 누군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나를 응원하고 계신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인가 누런 갱지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뒤집어 보고 쓰고 뒤집어 보길 반복하셨다. 내가 보기에는 옆으로 쭉 선만 그은 것 같은 낙서처럼만 보였다. 몇 번을 쓰고 뒤집어서 허공에 대고 들여다 보시고 뒷면을 살짝 따라 쓰기도 하시길 한참, 드디어 나를 부르셨다. 

“이게 아빠가 만든 너 사인이다. 요렇게 따라 그려 봐.” 

그랬다. 아버지는 그 사인이 일부러 만든 티가 나지 않도록 부지런히 연습시켰다. 무심한 듯 한 번에 촥 그리고 뒷면에 나타나는 내 이름이 신기해서 나도 열심히 연습했다. 지금처럼 사인이 많이 사용되던 때도 아니고 도장, 인감이 주류였던 시대였는데 아버지는 사인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나는 아무데나 내 이름이 필요한 곳엔 멋지게 사인을 해댔다. 하면 할수록 같은 사인이라도 세련되고 멋져졌다. 사인을 휘두를 때는 손목 힘의 강약이 자연스럽게 조절이 되면서 점점 어색한 티 없이 제법 그럴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근 40년을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사인을 사용하고 있다.      


“근데 선생님네 아빠는 왜 이 사인을 만들어 줬어요?” 


 정말, 아버지는 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나에게만 사인을 만들어주셨던 걸까? 프리랜서 강사로 매번 많은 계약서를 쓰고 다녀야 하는 막내딸의 업을 미리 짐작하셨던 걸까? 아니면 그 사인 때문에 지금 나는 나의 업을 갖게 된 것일까? 

 사인이라는 게 어떤 때에는 허락과 인정의 도구로, 서로에 대한 약속과 책임을 사이좋게 나누는 표시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과 나를 구별해주는 각각의 개성 같은 독특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다보니 사인을 보면 일면 그 주인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간결하고 명료한 삶처럼 으뜸 원(元) 한자에 동그라미를 친 깔끔하고 간단한 사인을 사용하셨다. 나의 사인은 아닌 듯 많은 기교의 자유분방함이 흐르고 넘쳐 영락없는 나를 닮은 듯하다. 


 내 사인을 앞으로 뒤로 돌려가며 들여다보시던 아버지는 어쩌면 사인에 주문 같은 기도를 새겨 넣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에서나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라는 무언의 응원을 넣어두셨는지도 모른다. 자꾸 쓰면 쓸수록 세련되고 멋져져서 결국은 그 세련됨과 멋짐 자체가 자연스러워진 사인처럼 나의 삶도 살아갈수록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숙해지고 더 나아지기를 바라신 건 아닐지. 뒤집어 봐야 비로소 또렷이 드러나는 사인의 내 이름처럼 남들이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뒷모습마저도 나 자신임을 한 치의 경계심도 풀지 않고 삶을 가꾸기를, 사람들 앞에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모습이기를 조용히 일러주시는 건 아닐까?     


한 녀석이 자기 이름을 가지고 나의 사인처럼 만들어 보려고 연습장을 펼치고 궁리에 궁리를 더한다. 녀석의 사인은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하다. 녀석이 어떤 어른의 삶을 꾸려나갈지 궁금한 것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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