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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Jan 31. 2022

집이 집을 품다? 집이 기억을 품다!!

제1호 수상한집-광보네(2019.09.06)



*웹진 인문360에 실렸던 글입니다. '수상한집-광보네'는 2019년 6월에 문을 연 후 여전히 제주4.3과 세월호, 그리고 국가폭력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기념관이자 카페, 다크투어의 숙소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국가+폭력+피해자+기념관=‘수상한 집’ 

 “나이가 이 정도 되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건 당연히 잘못된 것을 올바른 위치로, 원래 자리를 찾아 줘야 한다는 거였어요. 조작으로 간첩이 된 우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옳은 일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_ 강광보 선생  


 전국 최초로 제주에 자리 잡은 ‘제1호 수상한 집’에서 만난 강광보(79) 선생님! 재심을 통해 받은 보상금과 평생을 살아오던 집까지 기증한 이유를 묻자 이처럼 대답하신다. 정말 우문에 현답이 아닐 수 없어 잠시 부끄러워진다. 이름부터 하 수상한 이 공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강광보 선생님의 이런 생각이 큰 역할을 했다.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의 재심 등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지금여기에’는 피해자들의 억울한 세월을 함께 위로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를 본 강광보 선생님이 “그럼 우리 집에다 지어볼까?”하고 제안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 제주시 도련동에 들어선 수상한 집 광보네 


 많은 이를 간첩으로 만들고 그들의 삶을 망가뜨린 국가는 피해자의 항변에 진정한 사과 대신 “당신들이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라는 말로 그 세월을 잊으라 한다. “이렇게 많은 피해자를 만든 가해자가 정말 없을까? ‘시대를 잘못 만난’ 피해자만 고스란히 그 날 선 운명을 무한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수상한 집’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기부, 기증과 ‘지금여기에’의 ‘터무니없는 펀딩’을 통한 시민의 동참으로 지난 6월 22일, ‘수상한 집 광보네’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우리 집에 짓기로 결정을 하고 공사 기간 내내 친구들에게도 일절 알리지 않았어요. 보상금 받은 걸로 괜한 일 한다고 하는 시선이 있을 수도 있고……. 개관식 이후에 방송을 보고 친구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지요. 그래도 자기들한테는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참 감사하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_ 강광보 선생 


 간첩으로 몰린 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의심, 그리고 자신과 엮이지 않으려 피하는 모습은 이해가 되는 한편으로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이제야 지인들의 진심을 대할 수 있는 것은 선생님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다. 

▲ 개관식에 참여한 시민들


 생활인 강광보, 간첩으로 ‘만들어지다’ 

 “그땐 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다들 먹고 살려고 일본으로 밀항해서 돈을 벌러 갔었어요. 그게 무슨 특별한 일이 아니었거든, 왜냐하면 제주 4.3때 살려고 일본으로 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친인척들 믿고 그렇게 간 거였지. 나도 1962년에 백부가 일본에 있어서 밀항한 거였어요. 그때는 뭐 많은 재일교포들이 조총련과 연관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았지요. 그저 돈 벌어서 고향으로 보내고 빨리 고향에 돌아가자 하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_ 강광보 선생 


 강광보 선생님은 1962년 일본에 밀항하여 17년을 지내다가 불법체류자로 적발되어 제주로 강제 귀향했다. 그 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국가 폭력. 돌아온 그 해 1979년, 중앙정보부와 제주경찰서의 호출이 줄을 이었고 65일 동안 불법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는 악몽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10.26 사태’가 일어났고 선생은 풀려나 3년 여간 감시를 받는다. 


 그렇게 억울함을 삭이던 그에게 1985년, 이번엔 보안대에서 찾아왔다. 지하실에서의 갖은 고문은 끝내 ‘생활인 강광보’를 ‘간첩 강광보’로 만들었다. 1986년 간첩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아 광주와 전주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1991년 5월에 풀려났다.  


 “옥살이를 가보니까 나처럼 간첩 누명을 쓰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아. 강원도, 군산 이런 곳에서 ‘만들어진 간첩’들이었던 거지. 얼마나 허무한지, 그때 일본에 세 번 갔다가 간첩 혐의를 받아서 15년형을 선고 받은 이는 나보고 일본에서 17년이나 살고도 7년형을 받은 건 완전 성공한 거라고 농담을 했었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체념을 하니까 그런 농담도 나오더라고. 그런 시대였지 그때가.”_ 강광보 선생

▲ ‘만들어진 간첩’ 강광보 선생 


 생활인의 삶으로 돌아오려 애쓰던 선생은 제주의 또 다른 조작 간첩 피해자 강희철 선생이 2009년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길로 재심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준비를 해도 일이 흐지부지 되고 진척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지금여기에’를 알게 되어 도움을 받았다. 결국 2012년부터 재심을 준비해서 2017년 7월 17일, 무죄 확정을 받아냈다.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안전가옥을 꿈꾸다 

 “이 집이 좀 특이하죠? 원래 살던 이 작은 집은 내가 감옥에 가고 나니까 우리 어머니가 아들이 감옥에서 나오면 그래도 몸 누일 곳이라도 있어야 된다고 손수 지으신 집이예요. 그 어머니 마음이 어땠겠어?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지. 이 공간을 잘 살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_ 강광보 선생 


 원래 거주하던 집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건물이 그 집을 품는 모양으로 완성된 공간, ‘수상한 집’! 그 옛날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처럼 국가 폭력 피해자의 억울함과 원망을 오롯이 풀어낼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강광보 선생의 원래 집, 새로 지어진 건물이 이 집을 품고 있다


 일단 수상한 집에 들어서면 카페를 마주한다. 카페에서는 전문 바리스타의 커피와 한라봉과 감귤로 만든 ‘수상한 음료’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이 한라봉과 감귤은 국가 폭력 피해자이기도 한 이웃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라고. 

 선생이 지내던 집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재 공간은 ‘상실의 시대, 광보의 서재’로 꾸며 그가 교도소 복역 중 읽었던 책과 관련 기사 및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선생이 지내던 방은 ‘광보 이야기’로 선생 개인사 연표와 드로잉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복도 및 주방 공간은 ‘지금 여기에, 이웃 삼춘, 진실의 목소리’로 이웃 삼춘이자 친구인 제주 조작 간첩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사진, 영상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 지금여기에, 이웃 삼춘, 진실의 목소리로 구성된 복도


 2층으로 올라가면 카페 손님이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동시에 게스트 룸이기도 한 공간이 한라산 경관과 마주하고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숨은 계단을 따라가면 다락방이 나오는데 이 곳엔 곧 세월호의 기억을 품은 ‘기억 공간 re:born’이 들어와 공간을 함께 채울 예정이다. 아픔은 그냥 잊히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고 되새겨져 그 아픔을 풀어내야 한다. 이 두 기억의 안전한 쉼터가 되어줄 ‘수상한 집’에 붉은 노을이 가득 찬다. 


▲ 기억공간 re:born


수상한 건 피해자가 아닌 국가였다 

 “전국에 있는 조작 간첩 피해자의 공유 공간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게 되니 마음이 좋기도 하고 사실 부담감도 있어요. ‘지금여기에’ 분들이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해주니 개인적인 욕심 없이 잘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지. 개관 후 1주일 정도 됐을 때 일본 출생이면서 국적은 대만인 30대 중반의 남자분이 왔었어요. 우리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온 분이었는데 통역을 통해서 열심히 보고 듣는 모습이 참 기억에 남는 분이에요.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어쩌면 그동안 몰라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_ 강광보 선생 


 평범한 삶을 되찾기까지 30여 년, 강광보 선생은 수상한 집에서 전혀 수상하지 않은 삶을 또다시 꿈꾸고 있다. 선생 혼자만이 아닌 모든 국가 폭력 피해자와 함께 꾸는 꿈이다. 그 꿈이 아름다운 건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저는 수상한 집이 외롭지 않은 위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우리 광보 선생님이 계실 때 많은 분이 방문해 주셔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이제 곧 함께 하는 기억 공간 re:born의 재개관도 응원해주시구요. 8월에는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북콘서트도 준비했어요. 우리 제주에도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잖아요? 개인의 슬픔과 억울함으로 끝나지 않게, 사회적인 책임과 국가의 책임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복합적인 공간이 되길 바라는 거죠.”_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


 강광보 선생님과 함께 수상한 집을 지키고 있는, 카페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변상철 사무국장의 희망대로 우리의 위로가 그들에게 닿을 수 있는 ‘수상한 집’이 제주의 ‘광보네’를 시작으로 전국에 제2호, 제3호 계속되리라는 기대감도 커간다. 슬픔이 슬픔을 껴안고 위로가 위로에 가 기댈 수 있는 곳, 바로 그런 ‘수상한 집’을! 


"수상하다[殊常 --] : 보통과 달리 이상하고 의심스럽다." 


‘수상하다’의 사전적 의미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거창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대개 국가는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가 폭력을 목격한 기억들이 낯설지 않다. 보통과 달리 충분히 이상하고 의심스럽다. 수상한 건 피해자들이 아닌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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