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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Feb 16. 2022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가벼움

꽃길을 그리던 1월을 되새기며....

 그랬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너무나 과신하고 있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1월, 강사 채용의 시간이 돌아왔더랬죠.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업을 나가고 있는 학교 두 곳이 모두 교육청 관리로 들어가서 채용심사도 각 학교가 아닌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죠.

 

 각 학교가 개별적으로 강사 채용을 하는 경우 학생, 학부모 평가 등의 자료가 있기 때문에 담당 교사들이 해당 강좌 강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고 그 점이 강사 입장에서는 일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했어요. 반면 교육청 관리하의 강사 채용은 서류와 면접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불리한 면도 있지요. 지금까지 각 학교에서 해온 활동에 대한 평가는 3명의 면접 심사관이 알 수가 없으니 누가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작년에 미리 이 시스템을 겪어본 강사들은 개별적으로 공고가 나온 학교들을 먼저 공략하고 교육청 채용은 혹시 개별 학교 채용이 안될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들 듯이 지원하는 작전을 썼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그런 작전이 필요하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생각지 못했답니다. 그저 늘 그랬듯이 다니던 학교를 1.2 지망으로 지원하고 마음 편히 있었던 거죠. 

 

  2차 면접이 있던 날은 하필 낮부터 엄청난 눈까지 내려 기분도 하늘빛처럼 우중충했었지요. 코디 선생님은 우리 강사님들 꽃길만 걷자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라며 응원을 보내주었지만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15년 저의 시간이 심사관 3명의 평가에 던져졌다고 생각하니 참 그 기분도 묘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채용 과정을 설명한 이유를 눈치챘을까요? 그렇습니다. 쓸데없이 이런 촉은 무지 정확해서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는 법이죠. 결과는 지원한 학교 모두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여기저기서 확인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온갖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알려주며 위로도 해주고 개별 학교를 알아봐도 된다고 응원도 해주고 2차, 3차 공고도 있으니 그때 다시 지원해보라는 조언도 있었지요. 근데 뭐 그런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상처 난 자존심에 그저 제가 면접을 망쳤다 강변하는 수밖에. 그러면서 남편과 아들들에게 말했죠.


 "내가 15년 일하면서 자존심을 좀 세워야겠어. 2, 3차 교육청 지원 안 할 거야. 늦어도 6개월 내에는 다시 일할 테니까. 뭐 문제 있을까?"


 뜬금없이 불똥이 튄 남편과 아들들은 뜻대로 하라고, 전혀 다른 문제없다고, 저의 자존심을 존중 하노라 이야기합니다. 조금 뾰족해진 신경을 건들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들을 한 것이겠지요. 허허로운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편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무 준비할 것 없이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요. 고3이 되는 작은아들 운전수 노릇도 느긋하게 해 주고 3월 군입대를 앞두고 내려와 있는 큰아들과 운전 연수 겸 제주 해안가를 드라이브하는 시간도 좋았지요. 문득문득 정말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요.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습니다.


 오후 수업이 끝난 둘째를 데려오는 길이었어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군요. 평소 같으면 모르는 전화는 보험 가입이나 대출 안내라 여겨서 받질 않는데 이상하게 받게 됩니다.

 "여보세요. *** 선생님이시죠? 여기 교육지원청인데 혹시 **학교 수업이 가능하실까요?"

 아니 지금 사람 놀리나? **학교라면 1 지망으로 지원하고 10년을 넘게 근무했던 학교입니다. 물론 똑 떨어진 그 학교요. 잠깐 어리둥절해집니다.

 "아.. 근데 선생님, 제가 면접을 너무 못 봐서 이번에 채용이 안됐는데요. 무슨 일일까요?"

 이젠 상대방 쪽에서 당황해합니다. 너무 공손하게 채용 탈락을 고백하는 제가 뜨악했겠지요.

 "네, 선생님 1순위 선생님이 포기하셔서 차순위인 선생님께 연락드린 겁니다. 수업 가능하시면 좋을 텐데요."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그제야 눈치챕니다. 이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네. 조수석의 둘째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눈치입니다. 어떡하지? 갈등도 잠깐, 다음 순간

 "그런가요? 그럼요. 선생님. 수업 가능하지요. 이렇게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껏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수업을 결정합니다. 

 "엄마, 15년의 자존심은?"

 둘째가 빙글빙글 웃으며 한 방 날립니다. 이럴 땐 그저 민망한 웃음이 최고죠.


 "아니, 다른 학교면 됐다고 했을 텐데 **학교라고 하니까 딱 안 하겠다고 못하겠더라구. 올해까지 잘 마무리하고 다른 일도 좀 차근차근 알아봐서 잘 정리해 볼라구. 사실 뭐 그렇게 재빠르게 수업 가능하다고 대답할 줄은 나도 몰랐지. 자존심은 악착같이 잘 살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

 집에 와서는 빙글대는 표정의 세 남자에게 또 이렇게 제 입장을 애써 들이대는 저를 보게 됩니다. 


 "그래. 잘됐네. 나두 3년 전에 자존심 상해서 막 그랬었는데 그거 잠깐이야. 결정 잘했어."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친구는 먼저 이런 경우를 경험한 모양입니다. 이제 좀 쉬어도 되지 뭐 하고 위로해 주던 친구의 속마음은 그래도 일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나 봅니다. 

 "어휴 다행이다. 그거 잘 된 일이야. 한 학교라도 하고 있어야 다른 일도 들어오지. 잘됐네 잘됐어."

 후배를 위해 부리나케 몇 가지 수업을 연결해 준 선배도 이제야 다소 마음이 놓입니다.


 결론적으로 올해 저는 기존에 하던 두 학교 수업을 모두 하게 되었습니다. 2 지망 학교도 똑같은 이유로 제가 하게 된 거죠. 돌아 돌아 원래 자리이지만 참 많이 배운 1월입니다. 10년 넘게 한 학교에 있었던 것은 오롯이 제가 잘난 강사여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지요. 그 시간 동안 기존 학교의 채용 절차가 어느 다른 강사에게는 불리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것을요. 그걸 운 좋게 제가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수업을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학교 선생님들은 제가 더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었지요. 그래서 올해는 한껏 겸손하고 겸허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느 한 자리 수업하는 곳이라면 열심히 도전하는 강사들이야말로 삶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두요. 제가 15년 만에 지키겠다고 내놓은 자존심은 자만심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과 함께. 새로운 채용 절차의 시작에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3주의 시간이 마음은 끓는 순간이었지만 미리 알았어야 할 걸 늦게라도 알게 해 준 의미 있는 지점이 되었네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바빠집니다. 일 년 수업 밭을 일굴 준비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올해는 좀 덜 찡찡대 볼랍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올해 수업을 즐겁게 구상해 봅니다. 사실 잠깐 편했던 시간에 저에게 쉼이 좀 필요하긴 했구나 싶기도 했거든요. 벌써 2월 중순입니다. 여러분의 2022년은 여전히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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