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늠름하게 경례를 하는 아들. 그 모습을 아련하고도 깊은 물기 고인 눈으로 쳐다보는 어미와 애써 섭섭한 내색을 꾹꾹 눌러 담는 아비의 실루엣. 몇 번을 뒤돌아보며 웃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과 뿌옇게 희미해져 가는 아들을 눈으로 좇으며 서로의 어깨를 도닥이고 아쉬움을 달래는 부부의 모습.
며칠 전 첫째를 처음 군대에 보내며 그린 이별의 모습은 이랬다. 드라마에서처럼, 영화에서처럼. 그래서 주머니 속에는 평생 가지고 다니지 않던 손수건도 한 장 준비하고 표정 관리에도 한껏 힘을 준 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코로나 상황으로 부대 앞에서 헤어져야 하는 상황. 안 그래도 낯선데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단체로 어리숙해진다. 부모들도 머뭇머뭇, 장정들은 그보다 더 쭈뼛쭈뼛. 갓 잘라서 어색한 장정들의 삭발머리처럼 이보다 더 엉성할 수가 없다.
-여기서 인사를 해야 하나?
-조금 더 있다가 딱 2시에 보내도 되는 건가?
-저기까지는 따라 가 봐도 될까?
사람들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말풍선들이 둥둥 떠다닌다.
부모보다 여자 친구 얼굴에만 고정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애틋한 청년과 더없이 처량한 표정의 청년들. 그리고 “아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숨길 틈도 없이 비죽 나온 아들은 부대 담벼락 철조망 사진에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문구를 넣어 인스타에 올리며 마지막 존재감을 확인하느라 부산스럽다.
“자 이제 들어가 주십시오.”
교관인 듯한 군인의 한 마디에 갑자기 우왕좌왕, 모두가 다급해진다.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등 두드리며 어서 가라고, 늦겠다고 그렇게 허술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들은 한 번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정문 속으로 사라졌고 그제서야 갔구나, 실감이 확 몰려들었다. 한껏 힘을 준 것치곤 아 너무 얼렁뚱땅 보내버린 건 아닌가, 아쉬움이 타박하듯 제주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붙었다.
안경닦이로 전락한 주머니 속 손수건처럼 사는 게 다 그렇다. 어디 내가 힘 준 만큼 내 맘껏 흡족한 적이 있던가. 오히려 괜한 힘에 지레 지쳐버리기 일쑤였지 싶다. 잔뜩 힘이 들어간 탓에 자연스럽지 못한 시간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다 욕심 탓이리라. 허술하고 어리숙해서 또 그만큼 채워 넣는 재미도 괜찮지 않았던가. 얼렁뚱땅 흘려보낸 아쉬움이 있어서 또다시 뭔가 해 볼 용기도 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는 게 그렇게 팽팽할 일만은 아니다. 그저 느슨한 삶의 한 줄 한 줄을 조금씩 조이기도 하고 느슨하면 느슨한 대로 만끽할 마음을 키워 볼 일은 아닐까.
아들이 두고 간 시계를 편지와 함께 택배로 보낸다. 예전 같으면 잘 챙기지 않았다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두고 가면 쓰겠냐는 류의 닳아버린 잔소리가 차고 넘쳤을 테지만 오늘은 사뭇 너그러운 어미가 되어 본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팽팽한 시간을 제압하는 느슨함의 시절을 가져보라고.
병무청에서 안내문이 왔다. 둘째의 병역준비역 편입 통지서. 또다시 스멀스멀 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