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페북에 뜬금없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구름아.. 화요일 저녁 먹기로 핸.. 시간 될 거?-
대학동기 미오였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아주 띄엄띄엄 만나는 동기 모임이라 벌써 3-4년은 너끈히 못 만난 듯했다. 아마도 이번엔 미오가 총대를 메고 모임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같은 지역 주민이기도 하니 내가 적극 호응해 주어야지.
-오 예! 당연하지. 그때 보게.-
아주 깨방정을 떨며 아낌없는 리액션을 선보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과 동기들을 만났다. 거하게 모이는 줄 알았더니 우연히 만난 두 친구가 몇몇에게만 연락을 해서 다섯 명이 조촐하게 얼굴을 보게 되었다. 얌전히 다리를 꼰 삼계탕과 기가 막힌 배합을 자랑하는 소맥까지, 순식간에 코로나 시국 이전의 분위기를 소환해 왔다.
다섯이 모였지만 이야기는 우리 학번을 뛰어넘어 도청으로 승진 발령났다는 남자 선배며, 그때 과 커플이던 선배들 근황이며, 일찍 돌아가신 젊은 선배의 이야기로 과 동문회 못지않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수순대로 참석한 이들의 그때 그 추억을 다시 곱씹으며 한바탕 웃기도 하고 각자 사진 등의 증거품들을 돌려보며 당시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며 진실을 부정(?)하기도 한다. 결국은 왁자지껄도 시들해지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는 류의 공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걸까? 맞은편에 앉은 원훈이가 서울에 살고 있는 유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러면 또 다 돌아가며 통화를 해야 한다. 목소리에 열등감이 있기도 하거니와 지키지 못할 약속만 하게 되는 이런 전화 통화는 내가 딱 싫어하는 순서다. 그러나 어김없이 마지막으로 돌아온 내 차례.
마지막이니 적당히 안부를 묻고 다음에 내려오면 꼭 보자는 약속도 하면서 끊으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구름아, 너는 어때? 원훈이테는 계속 소식 듣고 있었는데. 애들도 다 컸다며?”
“그렇지. 애들도 다 크고 이제 좀 한가할 때라고 하더라.”
“그래. 구름이 너는 재능도 많고 해서 재밌게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그랬나? 재능은 무슨.... 유석아 요즘 내가 좀 이상해. 재미가 없다?”
“야 너 왜 그래? 너 안 그러잖아. 30년 지나서 나이 먹고 모습은 달라졌어도, 야 우리 그대로잖아. 너 그러지마...”
왜 그랬을까? 앞뒤 없이 던진 ‘재미가 없다’는 개떡 같은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전화기 건너 저만치서 애달파하는 친구의 말이 그지없이 따뜻했다.
“너 안 그러잖아... 그러지 마.”하는 그 말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훅! 위로가 되어버리는 걸까?
“요즘 재미가 없다.” 고 하면 으레 “야 우리 나이 때는 다 그래. 사는 거 별 거 없다.”라는 정해진 답이 돌아오곤 했다.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면서도 그럼 이렇게 재미없이 사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건가? 다들 그렇게 사는 건가? 마음이 헛헛했었다. 어쩌자고 이 좋은 봄밤에 나는 뒤늦게 칡과 등나무를 온통 마음에 배배 꼬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러지 말란다. 나는 그러지 않았었다고 말이다. 이 말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그래 맞다. 내가 그런 애가 아니었지. 아 유석이 녀석, 녀석은 여전하구나. 덕분에 꽃같은 봄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