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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May 27. 2022

보약 중에 최고는 통.신.보.약

“띠리링 띠리링~”

한참 운전 중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각종 여론조사와 보험 전화가 대부분이라 걸 알면서도 요즘은 긴장하며 다 받아 확인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아들의 콜렉트 콜이 뒤섞여 올 터였다. 

‘031-***-****’, 음... 이 번호는 보험 전화로 받은 것 같다. 무시하고 운전에 집중한다. 두 번, 세 번... 끈질기게 걸려오는 전화, 혹시?      


“엄마, 왜 전화 안 받으멘? 이제 시간 거의 다 됐네.....”

아뿔싸! 그 많은 전화를 다 받아내다가 정작 아들의 콜렉트 콜을 놓칠 뻔 했구나. 미안하고 아쉽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확진자 발생 소식과 군 면허 시험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바쁘게 듣고 끊었다. 후반기 교육에 들어가면서 몇 번 안 된다는 전화 찬스를 이렇게 한 번 날리게 되다니, 참 마음이 안됐다. 그래도 다만 잠시라도 아들의 목소리와 근황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 목소리에 기분이 봉봉 들떠서는 남편과 시어머니, 친정엄마에게까지 아들의 소식을 전한다. 아! 이래서 군대에 간 아들의 전화를 통신보약이라고 하는구나. 아주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다시는 콜렉트콜을 놓치지 않으리라. ‘승제콜렉트콜’이라고 번호도 저장해 둔다. 당황함에 얼렁뚱땅 넘겨버린 통신보약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요리를 하는 아들은 일찌감치 힘들더라도 이력이 될 수 있다고 취사병을 지원할 마음으로 입대를 했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요리하는 아들은 대형 운전병으로 차출되어 5주간의 후반기 교육까지 받고 있는 참이다. 인생이 어느 한때 자신을 끌고 가는 것이 뜻밖의 일이 되기도 한다고 아들과 고개를 끄덕인다. 군대에 간지 이제 60일을 막 지난 스물 하나의 아들은 참 마음대로 살았던 것 같다고, 군대 와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 약발이 오래 갈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내심 뿌듯한 건 사실이다. 이렇게 대견한 생각을 하게 될 거라면 군대에 말뚝 박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아들이 들으면 기절할 만한 생각도 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긴장감으로 기다리던 시간이 어느 정도 느슨해질 즈음, 또 생소한 번호의 전화다. 

‘02-***-****’, 저장해 둔 아들의 번호가 아니다. 그래도 모를 일, 속는 셈치고 받는다. 

“어....마.....웅....웅.....” 

녹음된 듯이 웅얼대면서 들리는 목소리, 언뜻 ‘엄마’라고 하는 것 같다.

“누구세요? 여보세요?”

“어,,,,마,,,웅.....”

이건 또 다른 피싱 전화인가? 끊었다. 아무래도 내 번호가 어딘가에 유출된 게지. 자녀 목소리로 사기 치는 피싱이 있다던데 참 여러 전화를 받아보는구나. 그렇게 두 번, 요즘 피싱 사기범들의 집요함에 한 번 놀라고 내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데에 두 번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때 울리는 전화, ‘승제콜렉트콜’이라는 저장 번호가 선명하다.     


“아고, 아들! 잘 지내고 있어? 어떻게 전화할 시간도 되고?”

내 목소리가 한껏 놀라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응 엄마, 근데 아까 목소리 안 들련? 계속 여보세요 하다가 끊기던데”

“어? 그거 너였어? 웅얼웅얼 녹음된 것 같이 들리고 해서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는데?”

“아. 그거 자리가 안 좋았나 보네. 엄마 그 전화는 그린비라고 군인전용전화로 좀 싸다고 해서 써 봤는데. 친구들한테 콜렉트 콜하면 애들이 좀 전화비 부담스러울까 봐.”

이번에도 역시나 시간이 좀 지체된 채로 통화를 마쳤다. 그렇게 아들은 또 ‘승제그린비’로 저장된다. 이 보약은 웬일인지 기분 좋음과 동시에 짠한 마음을 씁쓸하게 남긴다. 매번 놓치고서야 애틋하게 끊게 되는 아주 고약한 구석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다림과 막상 다가왔을 때 놀라고 황망한 마음을 좀체 숨길 수 없는 그런 고약함 말이다.      


‘승제콜렉트콜’과 ‘승제그린비’는 번갈아가며 소식을 전해온다. 다쳐서 민간병원을 다녀오고 반깁스를 했다는 가슴 철렁한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후방의 화생방대대로 자대배치 받았다는 그나마 다행인가 싶은 소식을 전해오기도 한다. 조금은 평정심을 지닌 채 통신보약을 섭취할 수 있게 된 어미는 나름 벌렁거리는 마음을 꾹 누르는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모든 엄마들이 행복한 통.신.보.약을 절대 놓치지 않길 함께 기원하면서. 뭐니뭐니 해도 통신보약이 최고다.     



전화에 부재중 번호가 떠 있다. ‘02-7**-****’....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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