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작심이라든가 버킷리스트라든가 하는 부분은 늘 쉽지가 않다.
난 그저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혼자 슬그머니 마음먹는 편이다.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퇴로를 어느 한 구석에 마련해 놓아야 하는 얍삽한 계산이다. 선언적 행위가 늘 불편한 것은 선언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나의 의지를 공적으로 밝히는 건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왠지 '꾸역꾸역'이라는 낱말이 함께 연상된다. 물론 뱉어 놓은 말에 대한 부담을 꽤 가지는 나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다보니 작심하고 삼일만에 흐지부지 되는 나약한 나의 의지를 내 스스로가 버텨낼 재간이 없다. 다시 작심하기보다는 내동댕이쳐진 마음을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차라리 혼자 마음먹고 힘들면 빠꾸시키고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인지도.
버킷리스트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혹은 '꿈목록'처럼 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목표 설정 정도로 사용되곤 하지만 유래를 따져보면 자살이나 교수형에 처해 자신을 지탱해주던 양동이(버킷)을 차버리기 전의 소망들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써내려 갔을 간절함, 쉬울 리가 없다.
'작심삼일'은 흔히 결심이 삼일을 가지 못하는 나약함을 탓하는 기류가 많지만 그 와중에는 어떤 계획이나 결심에 경솔하지 않게 삼일 동안 심사숙고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죽기 전, 그리고 결심하기 전, 간절함과 신중함이다.
간절하고 신중하게 마음먹은 일을 철회하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할지. 외면보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이렇게 마음먹기를 반복하면서 단단해지는 거겠지. 성취 여부를 떠나 무언가를 작심하고 뚜벅뚜벅 한 걸음이라도 걸어가 본 사람이 더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
그래서 오늘은 하루종일 나의 '작심'에 골몰해보았다.
팔랑대는 이런저런 마음들을 워워 진정시키면서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것은 '1년 동안 다이어리 끝까지 써보기'. 다이어리 욕심이 많아 몇 개를 마련해 놓고 매번 다 쓰지 못하고, 기록도 여기저기 흩어져서 늘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나마 2022년 다이어리는 4월에 한 번 바꾼후 마지막 주까지 함께 해 75%의 실행률과 절반의 만족감을 설핏 가져봤다.
2023년에는 딱 한 권의 다이어리를 1년 꽉차게 잘 써 봐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가볍게 혹은 진득하게 들어앉을 많은 작심과 결심, 버킷리스트와 위시리스트 등 이름을 달리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변화무쌍할 나의 마음들을 곱게곱게 기록해나가야겠다.
아! 이게 뭐라고! 또 마음이 설렌다. 흠. 일단 다이어리부터 마련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