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1학번이다.
대학보다는 공무원 시험을 보라던 아빠 때문에 대학도 그냥 대충 썼다. 지금은 제주 지역의 원로 문인이 되신 고3 때 담임이 국어선생님이었던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반엔 유독 국어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쓴 친구들이 많았다. 과 선택에 그리 고민이 많지 않았고 취미를 물어보면 그저 만만한 책읽기를 단골로 대답할 때인지라 진짜 내가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제법 쓴다는 착각에 선택한 것이 국문과였다. 글을 쓰고 싶었으면 문창과가 더 나았을 거라는 건 입학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맹숭맹숭한 대학생, 91학번 새내기가 되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밋밋하게 시작한 것과는 달리 그해 91년도는 '분신정국'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던 해로 기억된다. 백골단, 폭력진압, 분신항거, 국가폭력, 열사투쟁.
핑크빛이어야 할 새내기의 봄은 주먹 쥔 구호와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최루탄, 청청 패션의 백골단과 창살을 둘러 쓴 전경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교문 투쟁으로 대체되었다. 사상이나 이념 따윈 몰랐다. 그저 나 같은 새내기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앞섰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양심이 꿈틀했다. 이런 죽음은 마땅히 함께 애도하고 정당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행동화 됐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맹숭맹숭 대신 가열차고 치열해졌다.
가열차고 치열한 새내기 91학번들은 개강 잔치에 맥주 먹는 것이 부끄러웠고 나이트클럽에 다녀오면 며칠을 마음 불편해했다. 수업 때문에 농성하는 사람들 옆을 지나쳐 갈 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 얼굴을 붉혔다. 교정의 꽃바람에 마음이 설렐 때면 누구에겐지 모를 미안함에 '정신차려'를 마음 속으로 외쳤고 묘한 기류의 남학우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마음껏 달콤할 수 없었다. 단식 투쟁하는 선배 앞을 지나치지 못해 점심을 건너 뛰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그때.
왜 그렇게까지 부끄러움 투성이였을까. 30년이 훅 지난 지금. 간혹 그때 나는 치기 어렸던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정말 진심이었나 하는 의심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도 되나 하는 옅은 자괴심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뻔뻔해짐을 느낄 때마다 30년 전 단순 명료했던 내가 그리워진다. 가장 부끄러웠던 그때, 그 부끄러움을 알아챌 수 있었던 그때가 내가 가장 예뻤던 때였을지도 모른다. 양심이란 것이 건강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무언가를 행할 수 있었으므로. 가리고 숨기는 것이 유능한 처세로 여겨지는 것도 못내 쓸쓸하다. 요즘 나는 그리 예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