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술 머무는바람 선생님이십니다."
그 말만 기억이 난다. 작은 학교의 면접장. 질문지에 따라 아이들을 무엇에 중점을 두고 가르칠 건지, 소위 문제아라는 아이들은 어떻게 다룰 건지, 학교의 협조 요청에는 어떤 태도로 임할지, 학부모와의 소통은 어떻게 해나갈 건지 뭐라고 주절주절 대답한 것 같긴 하다. 평상시 생각을 편하게 말하자 싶었지만 말하는 내내 정말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는 질문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아 이 산만함! 그와 함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람 든 무. 왜였을까?
오전에 시어머니와 김치를 담갔다. 배추 세 포기와 어제 텃밭에서 뽑아온 무. 굴쌈을 먹으며 배추 김치를 후딱 해치우고 무 김치를 준비했다. 작긴 하지만 또랑또랑한 아이의 고집스러운 뒷통수마냥 아주 단단하고 실해 보이는 무 녀석들. 무청도 싱싱하고 몸통의 절반이 초록이라 그냥 껍질을 돌돌돌 까 먹어도 시원하고 달콤할 것 같았다. 길쭉하면서도 넓적넓적하게, 그리고 두툼하게 잘라 준비한다. 역시 작지만 속이 꽉 찬 것이 무김치가 맛나겠다 싶은 그 순간,
"응? 이건 속이 왜 이렇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르던 무에 바람이 팡팡 들어 푸석푸석한 게 아닌가? 구멍이 숭숭, 돌담이라고 해도 믿겠는 걸. 쯧쯧 혀를 차며 마지막 무도 쩍 갈라봤다. 아니, 이 녀석은 바람 정도가 아니라 속이 텅 비었네. 겉으론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두 녀석의 빈약한 속에 은근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내 너희를 아깝다, 요망지다, 작아도 대견타 여겼는데 이런 텅 빈 속을 보이다니.
어디 무 뿐이겠는가? 면접장에서 바람 든 무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내 빈 속을 누가 알아볼까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지. 단단한 척 하지만 싸한 바람 한 웅큼 품고 비어가는 스스로의 물컹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건 무나 사람이나 똑같을 거다. 내가 바람든 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쓸쓸해졌다. 바람 난 무보다는 낫다고 여겨야 하나 웃기지도 않은 생각도 해보지만 역시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바람 든 무로는 무조청도 만들고 무 말랭이 하기도 허주게."
어머니의 한 마디가 잠깐 반짝한 듯 했다. 다 쓸모 없이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기도 애쓸 일이라고 툴툴 대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바람 든 무로 만든 무조청으로는 떡을 찍어 먹기도 하고 뜨거운 물에 타서 차로도 마시면 기침과 목감기에 그렇게 좋단다. 잡내, 비린내를 잡아주는데도 탁월하고 그도저도 아니면 무말랭이로 만들어서 입이 궁금할 때 주전부리를 하거나 육수를 우려낼 때 사용해도 좋다니 괜히 타박하던 마음이 미안해진다.
바람 든 무 자체의 존재와 쓸모를 알아주는 건 무가 아니라 무를 바라보는 이의 몫. 누구나가 그런 안목을 가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안목 없음은 알아채지 못한 채 괜한 배신감에 몸을 떨었구나. 쯧쯧은 바람 든 무가 아닌 나에게 보내져야 한 것을. 어쩌면 면접장에서 어느 한 사람은, 내 지인들 중 몇몇은, 나의 무르고 빈 속에서 그나마 괜찮은 구석을 알아봐주는 안목을 지닌 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목를 많이 사용하는지라 이 바람 든 무는 얇게 얇게 저며 썰어 생강과 함께 청을 만들기로 했다. 감기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구멍 숭숭한 바람 든 무가 나의 목을 지켜줄 것이다. 남의 빈 속으로 나를 보함에 감사함을 배운다. 빈 속일망정 나도 누군가를 보할 수 있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