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무는바람 Apr 17. 2023

도로로 뛰어들지 않겠다

2023.04.16

오늘은 세월호 참사 9주기이다. 세월호 참사는 나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무력감과 우울감을 주었다. 가라앉는 아이들을 TV 생중계로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자책감과 누구에겐지 모를 원망. 그래서 해마다 4월 16일이 되면 나름의 애도의식 같은 걸 해왔다. 애도의식이라고 해봤자 사실 특별한 건 없다. 세월호 기억관을 다녀온다든지, 세월호 추모 행사에 참가한다든지, 그도 아니면 4월 원고는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쓴다든지 뭐 그런 거다. 솔직히 그들을 애도하는 건지 내 마음을 위로하는 건지 그조차도 명확하진 않다. 어쩌면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이 더 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올해는 기억관에 다녀오지도 못하고 행사 참여도 못했다. 대신 한 작은 도서관에서 진행된 생존학생이 쓴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에 슬쩍 끼어들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 같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는 이태원 참사를 소환했고 우리는 과연 어떤 안전한 공간을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안전한 공간은 어디일까? 


 고3 학력고사가 끝나고 후기대학을 준비하던 친구를 만나러 독서실에 다녀오다가 강도를 만난 적이 있다. 밤길이긴 했으나 주택가 골목에서 칼 든 강도를 만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일. 그것도 집 앞에서. 그날따라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고 싶더라니. 앞문과 뒷문 사이 그 몇 미터 간격에서 이런 엄청난 일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다행히 우리집 앞이라는 걸 모르는 강도 덕분(?)에 다소 느슨해진 틈을 타서 손을 뿌리치고 바로 그 뒷문으로 뛰어들어가서 큰일은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트라우마니 외상 후 스트레스니 그런 건 모르고 인제의 한 용한 보살에게 가서 넋들임을 받았다. "어허 넋들라 넋들라" 하며 머리 정수리께를 돌아가며 콕콕콕 침을 놓는데 그 넋들라 소리에 오히려 넋나갈 뻔. 어쨌든 나대신 부모님이 좀 안정이 되셨고 나도 그만그만한 듯했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도 뒤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나면 쭈뼛, 식은 땀이 나면서 홱홱 돌아봐 오히려 뒷사람을 움찔하게 만드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그 증상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되고 심해지기도 해서 인도로 걸을 때 앞에건 뒤에건 사람이 나타나면 차도로 이어지는 인도 끄트머리로 걸었다. 조금의 위협이 느껴지면 차라리 차도로 뛰어드는 게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는 위협이 되는 그 혹은 그녀가 뛰어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장 위험해서 제일 안전한 곳이 되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라니. 


 그래서 내가 꿈꾸는 행복한 시간은 나의, 우리의 안전한 공간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이다. 아직도 나는 인도의 끄트머리 길을 걷는다. 그 위태롭지만 안전한 공간이 조금씩 조금씩 넓어졌으면 좋겠다. 누구의 일상이든, 예측가능하게 지켜질 수 있는 것 또한 안전한 공간이어야 가능할 일, 오늘도 '뭍으로 밀려'나 일상을 '살아낼'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이제는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꼭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만이 아니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우리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우리를 우리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그런 공간.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두고 놀러가다가 죽었으니 원은 없겠다는 식의 불온하고도 폭력적인 시선이 거둬진 우리 안의 안전한 공간을 꿈꾸는 게 욕심은 아니겠지. 나와 다른 누군가를 틀리다고 괜한 날을 세우지 말길. 무념히 던지는 폭력적인 시선을 거둬 안전 공간을 넓히길. 


내가 꿈꾸는 안전한 공간에서 나는 더 이상 도로로 뛰어들지 않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 든 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