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애도
나에게는 아버지의 형인 큰아버지와 동생인 작은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 둘 더 계신 셈이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 큰아버지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댁에는 큰아버지 혼자 계셨고 나는 어깨에 걸쳤던 쌀 한 포대를 식탁 옆에 내려놓았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창밖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근황을 나눴다. 큰아버지가 작은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으로 취업하셨다는 사실과 내가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는 안부가 찻잔을 따라 이어졌다. 정적이 거실을 채울 때쯤 나는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잠시 말이 없으시던 큰아버지는 허리를 고쳐 앉았다. 책을 쓴다고 하니 아버지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 하셨다.
큰아버지 : 네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쯤일 때인가? 그때 이사를 갔었지.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셔서 장남인 내가 농사일을 할 수밖에 없었지.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와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했고 그 돈으로 동생들은 모두 학교에 보냈어. 네 아빠도 작은 아버지처럼 그냥 공부만 열심히 했으면 됐을 텐데...
나 :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큰아버지 :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랑 가출을 했지. 전화를 받아 보니 경주 경찰서드만. 이놈들이 가출을 해서 경주까지 갔더라고. 그 당시에 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니까 기념품 가게에서 수건을 몇 백장씩 훔쳐서 팔려다 걸린 거지. 경찰서 가서 네 아버지가 나한테 한 첫말이 사식을 사서 넣어 주라는 말이었어. 배가 고팠겠지. 나는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났어. 합의금을 내고 다시 집으로 데려왔지. 학교에서는 퇴학을 시키려고 하더라고. 내가 학교 교무실에 찾아가 사정사정했다. 그래서 겨우 다른 중학교로 전학을 시켰는데 거기서도 끝까지 못 다니고 자퇴했지.
나 : 아버지는 저한테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기계공고였나?
큰아버지 : 아니다. 너희 아버지 중학교 중퇴다.
나에게는 부끄러워서 거짓말을 한 걸까? 큰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얼마 전에 강제 전학을 온 학생과 상담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요즘 시대의 학생이라면 학교상담실에서 자주 만났겠지? 아빠를 상담하는 상상을 얼른 지우고 다시 큰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큰아버지 : 네 아버지는 친척집에서 가스 배달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잠깐식 했지만 꾸준히 못 했어. 그때 큰엄마랑 모아 둔 천만 원이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자리 잡으라고 상가의 가게를 마련해 줬지. 그 당시에 음악 듣는 사람이 늘어나고 나랑 네 아버지 모두 음악을 좋아해서 레코드 가게를 차렸지. 근데 장사는 안 하고 네 엄마를 만나서 연애만 열심히 하더라고.
나 : 들었어요. 아빠는 레코드 가게를 했고 엄마는 앞집에서 옷가게를 해서 서로 친해지게 되셨다고 했어요. 레코드 가게는 제가 6학년 될 때까지 했으니 제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듣고 싶은 노래를 실컷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큰아버지 : 어쨌든 결혼하고 자리를 잡아서 이후론 좀 마음이 편했지. 근데 네 아빠랑 엄마가 참 많이 싸웠다. 결국 서로 헤어지고 아빠도 그렇게 가버렸지. 네가 장남이니 대학을 나올 때까지는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나 :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큰아버지. 제가 큰아버지 입장이었다고 생각해도 쉽지 않은 결정일 것 같아요.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게요.
큰아버지 : 네 동생한테 미안하다. 치아 교정 하는 비용을 보테 준다고 약속했는데 못 지켜서. 사실 그때 나도 여유가 없었다.
나: 아니에요. 그동안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 큰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장남으로 할머니를 끝까지 모시고 동생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잖아요.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닮으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처럼 스스로 세상을 저버려도 안되고 부모님 말을 안 듣고 사고 치는 것도요. 저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처럼 살면 안 된다는 예시를 보여주고 그 반대로 살면 된다는 식으로 배운 것 같아요. 대신 큰아버지에게 책임감을 배우고 작은 아버지에게 공부하고 책을 쓰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거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날 사진 앞에서의 큰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그제야 장례식 날이 떠올랐다.
“내가 너를 위해 울어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도 친척들 사이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큰아버지는 말을 끊었다.
“그만하자. 생각난다.”
나는 그게 단단함인 줄 알았다. 형이니까, 장남이니까. 남자니까. 하지만 오늘 알았다. 그것은 큰아버지 나름의 '안도'를 찾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장남이라는 담장 안에 슬픔을 가둠으로써 남은 가족들을 지키려 했던 억척스러운 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고 생각했다. 나만 자살유가족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의 형제가 있었고 부모가 있었으며 아내가 있었고 딸이 있었다. 쉬쉬하는 죽음이었기에 남들에게는 물론 가족들 조차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슬픔을 반으로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했던 것이다. 내가 울었던 만큼 아버지들도 충분히 울었을까. 남자는 슬픔을 감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기에 속으로 우는 긴긴밤이 많았을 것이다. 오늘 큰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