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기 : 할머니의 베개처럼

by 제갈공감

할머니의 부고를 진달래가 만개한 산정상에서 접했다. 분홍빛으로 덮인 산을 가쁘게 오르는 동안 할머니는 마지막 숨을 가쁘게 쉬었겠지. 생전에 할머니는 나만 보면 눈물을 흘리셨다. 잃어버린 아들과 닮은 내 얼굴을 보며 등을 쓸어주시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피곤한 몸을 거실 소파에 던졌다. 손바닥으로 소파의 끝을 쓸어내리며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큰아버지가 주던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내 결혼식 때 묵직한 현금 뭉치를 건네셨고, 난 정확하게 그 금액으로 소파를 샀다. 소파에 앉을 때마다 할머니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몇 해 전부터 사람들을 정확하기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손자인 나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셨다. 나를 알아보신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길래 손자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하늘에서 할머니는 아버지를 만났을까? 편안한 곳에서 오손도손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되돌아보면 그리움이 차오를 때마다 시를 썼다. 썼다기보다는 마음에서 새어 나온 것 같다. 축축한 감정은 주로 잠 못 드는 밤에 흘러나왔기에 베개맡에 누워 머릿속으로 시를 쓰곤 했다. 밤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밤에는 할머니도 떠올랐다. 대학시절 ‘베개’라는 제목의 시를 썼는데 기억을 더듬어봐도 뒷부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베개

잠이 고이지 않는 건조한 밤이 있습니다

그럼 밤이면 베개는 더욱 까슬까슬하고

그리운 사람은 더욱 그립습니다

……

……


창고에서 젊은 시절 쓰던 노트를 뒤져보았으나 시가 적혀 있는 페이지를 찾지 못했다. 창고의 불을 끄고 나오는데 창고가 다시 밝아졌고 나는 또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대학교 기숙사였다. 과거의 나는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었고 마침 룸메이트는 없어 나는 맞은편 침대에 앉았다.


상담샘 : 잠이 안 오나 보네?

청 년 : 악! 놀랐잖아요. 귀신인 줄 알았네!!

상담샘 : 앗 미안.. 인기척 좀 낼 걸 그랬나… 낮잠 많이 잤어? 왜 잠을 못 자는 거니?

청 년 : 아무래도 저는 야행성인가 봐요. 밤이 되면 머리가 감성 모드로 변하는 것 같아요. 오늘은 오랜만에 아빠 생각이 났어요.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보니 할머니도 아빠 생각으로 잠 못 드시는 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눈물이 났어요. 슬퍼질 때면 저도 모르게 시상이 떠올라요. 그럴 땐 굳이 책상 앞에 앉지 않고 베개를 베고 누운 채로 머릿속으로 시를 쓰곤 해요.

상담샘 : 신기하네. 마침 나도 오늘 그 시를 떠올리려 해도 뒷부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답답했거든. 그 시를 짓던 날로 돌아왔네. 혹시 지은 시를 들려줄 수 있을까?

청 년 : 아직 글로 옮기진 않아서 머릿속에 있어요. 낭독하려니 부끄럽네요.

상담샘 : 그래도 한번 들려줄 수 있을까? 아니면 써줘도 되고… 부탁할게.

청 년 : 그럼 불을 켜고 책상 앞에서 한번 써볼게요.

상담샘 : 그래 고마워.

청년이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래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까지만 쓰고 멈췄다. 청년은 계속 쓰고 있는데 뒤에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펜이 지나간 자리에 아무런 글자도 없었다. 다시 청년에게 말을 건네려던 찰나 순식간에 현재로 돌아왔다. 잊혔던 시 구절을 찾기 직전에 돌아와 무척 아쉬웠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책상 앞에 앉았다. 과거로 돌아갔음에도 잊힌 시를 찾지 못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의 뒷부분을 새롭게 써내려 갔다.


베개

잠이 고이지 않는 건조한 밤이 있습니다

그럼 밤이면 베개는 더욱 까슬까슬하고

그리운 사람은 더욱 그립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리니 눈물이 흐릅니다

얼굴은 떠오르지만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를 찾아 헤매다 기타를 치고 부르던 아빠의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이제는 촉촉해진 베개를 베고

잠을 다시 청해보려 합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베고 주무시는

할머니의 베개처럼


할머니 항상 감사했어요.

하늘에서 할아버지, 아빠와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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