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기 : 행복은 파도를 타고

by 제갈공감

매일 아침 9시, 찬 공기를 가르며 독서실 책상 앞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꽂았다. 밤 12시, 도서관 불이 꺼질 때까지 좁은 칸막이 안에서 나 자신과 싸우던 시절. 당시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늘 빅뱅의 노래들이 머물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죠. 우린 시들고 그리움 속에 맘이 멍들었죠...”


가사 한 구절이 가슴에 박힐 때마다 나는 닳아버린 볼펜 자루를 고쳐 쥐었다.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나만 거친 파도 한가운데 멈춰 서서 위태롭게 노를 젓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정말 봄이 올까?' 보이지 않는 미래와 싸우며 상담 이론서를 달달 외우던 그 고단한 계절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이 시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살 유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상담교사'라는 이름표를 얻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 같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교복 입은 아이들의 떨리는 숨소리를 듣는 전문상담교사가 되어 있다. 오늘은 상담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이야기치료' 연수에 참여 중이다. 강사는 우리에게 하얀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며 나직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자, 이제 자신의 '인생 곡선'을 그려보세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가로축으로, 행복의 크기를 세로축으로 해서 여러분의 삶을 그래프로 그려보는 겁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여러분의 마음이 지나온 길을 따라가 보세요.”


펜을 든 손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내 인생의 가로축을 따라 선을 긋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의 평탄한 선이 이어지다, 스무 살 아버지를 잃었던 그 지점에서 그래프는 수직으로 하강해 바닥을 쳤다. 암흑 같은 심해 속을 유영하던 긴 선은, 매일 열다섯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공부하던 그 치열한 고립의 시간을 지나, 합격 통지를 받던 날 비로소 다시 솟구쳐 올랐다. 그래프는 직선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마치 거대한 파도의 형상이었다. 그 파도의 골짜기마다 내가 흘린 눈물과 다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강사 : 자, 이제 본인이 그린 그래프를 옆 사람과 공유하며 설명해 볼까요?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골짜기를 빠져나왔는지요.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 삶의 굴곡을 설명했다. “제 인생의 가장 깊은 골짜기는 스무 살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을 때, 제 세상도 함께 무너졌거든요. 그 뒤로 오랫동안 저는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이해하고 싶어 상담 공부를 시작했고, 매일 아침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고독한 파도를 넘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연수실 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이내 옆에 앉은 동료 교사가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리고 강의실을 가득 채우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동료 교사 A : 샘, 그 시간을 버텨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의 그 파도가 누군가에게는 방파제가 되어줄 것 같아요.

동료 교사 B : 맞아요.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어요. 선생님의 인생 그래프는 정말 아름다운 파도네요.


박수 소리가 따뜻한 위로가 되어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누구에게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던 지난날의 고통을 통째로 격려받는 기분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행복은 잔잔한 호수 위에 머무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이제 정말 행복해도 될까?'

늘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살았던 나였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데 나만 이렇게 웃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을 해도 되는지 매 순간 스스로를 검열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동료들이 보내준 박수는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깊은 골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높은 봉우리가 더 빛나는 법이며, 이제 그 외투를 벗어던져도 된다고 말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때로는 집어삼킬 듯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 파도를 타고 넘다 보면 반드시 평온한 수평선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하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마치 "잘했다, 내 아들아. 이제는 마음껏 행복해라"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이제는 안다. 나에게도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겪은 이 거친 파도의 경험이, 지금 교실 구석에서 홀로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의 돛이 되어줄 수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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