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기] 상담교사가 되려던 이유를 고백합니다

애도가 직업이 될 때

by 제갈공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상담을 마친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상담실을 떠났다. 3학년이 된 후 진로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깊어진 소녀였다. 상담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좋아하는 것들과 잘하는 것들을 찾으려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았고 그런 생각이 커질수록 소녀는 작아졌다. 꿈을 찾는 여정을 대신해 줄 순 없었기에 답답한 심정을 조금 털어줄 뿐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이십 대의 나였다. 불안과 결심이 동시에 묻어 있는 얼굴은 어디론가 빨리 도착해야 할 것처럼 조급해 보였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청년에게 자리를 권했다.


청년 : 선생님. 저는 상담교사가 되고 싶어요.

상담샘 : 그래? 이유를 말해줄 수 있을까?

청년 :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잖아요. 저는...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으니까요.


공기가 잠시 멎었다. 그 문장은 오래 전의 나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서기로 했다.


상담샘 : 정말 그게 가장 큰 이유였을까?


청년의 눈이 흔들렸다.


상담샘 : 솔직해지자. 우린 많이 불안했잖아.

청년 :...

상담샘 : 상담교사가 되려던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직업이었기 때문이야.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열심히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선택지였지. 아버지를 잃고 난 뒤 세상은 갑자기 위험한 곳이 되었고 불확실한 미래를 버티면서 또다시 실패를 견디는 삶이 두려웠어. 그런 현실에서 상담교사라는 직업은 꿈이기 전에 안전장치였어. 공무원이라는 울타리와 정해진 급여가 너를 안심시켰지.

청년 :... 그럼 저는 도망친 건가요?

상담샘 : 도망이라기보다 살아남으려 한 거지. 애도하느라 바빴고 부서지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묻지 못했지.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말이야.


청년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년 : 그래도... 누군가는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상담샘 : 맞아. 나도 그랬어. 한동안 내담자를 통해 아버지를 구하려 했지. 죽고 싶다는 아이를 만나면 숨이 막혔어.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으면 내 탓인 것만 같아 밤잠을 설쳤어. 그때 나는 상담자가 아니라 여전히 아버지를 잃고 울고 있는 아들이었을 뿐이야.


상담실 책장에는 수많은 이론서가 꽂혀 있지만 정작 나를 흔들었던 것은 이론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상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그 미완의 애도를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감싸려 했다. 누군가를 구하면 과거가 덜 아플 것 같았다.


청년 : 그럼... 상담교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 아닌가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상담샘 : 타인의 슬픔을 반으로 나누고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을 밝혀주는 것은 보람된 일이야.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일도 아니고 누군가를 끌어올리는 구원자도 아니야. 힘든 시절을 버티고 있는 사람 곁에서 스스로 빛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함께 머무는 일이지. 결국 상담교사는 구원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의 증인인 셈이지.


청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결연함 대신에 함께 서 있겠다는 다짐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안전해지고 싶었고 덜 미안해지고 싶었을지 모른다. 애도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거창한 다짐보다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를 테면 나의 내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을 때 또다시 남은 사람이 되어 죄책감에 휩싸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상담실 문이 닫히고 청년의 모습은 조용히 사라졌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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