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추운 산책의 단상

24년11월21일의 단순한 걸음

by 강조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라고 해야할까? 행동 습관이 있는데.. 꼭 굳이 춥게 입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때면 산책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었다. 위엔 대충 후리스 하나를 걸쳤었고, 아래에는 여름에도 입던 치마 하나,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였다.

불을 비벼 끄고 나면 순순히 들어가고 싶지 않아진다. 나는 집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그냥 터벅터벅 걷는다. 눈에 띄는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재생 해놓고 몇 곡 끝날 때까지만 걷다가 들어가는 거야! 하고 마음 먹는다. 이건 내 오랜 습관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걸어갈 거리를 노래의 곡 수로 정해두고, 아쉬우면 몇 곡 더 듣다가 들어가거나 딱 맞춰서 걸음을 옮기는 일이다. 어쩌다 trioon같은 7분 여의 노래가 나오면 그만큼 걸음이 길어지는 것이고, 더 듣고 싶은 노래가 나오면 입구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끝나면 산책을 끝내기도 한다. 특히 요즘엔 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들을 많이 듣는데, 대개는 한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 나오기까지 들어가는 일이 잘 없었다.


하여튼 그렇게 걷다보면 조금은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을 꽤 마주친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두꺼운 패딩까지 입은 사람들이 이젠 많다. 그럴 때면 괜히 내 추운 발이 신경 쓰이기도 하지만, 그냥 다른 생각들을 한다. 산책을 하다보면 정말로 마구잡이의 생각들이 이렇게 든다. 특히 요즘은 사람들은 이렇게 추운 날들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얼마 전에 어떤 글을 하나 읽었는데, 거기서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랬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였고, 삶과 죽음의 불가해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숨탄 것들의 가련한 욕망이, 그리고 운명이 이 삶을 살아내는 것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더라면 죽음이란 불가피한 것인가. 우리는 사실 경계를 잘 들여다보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 끝과 끝, 그리고 그 사이에는 삶을 직시하지 못 할 슬픔이 있고 생각보다 살아갈 만한 미명이 존재하고 또 이해받지 못 할 순응이 있으며 조금은 그럴 지도 모르겠다 생각 할 순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스스로 이를 바라보기에는 마냥 힘에 부치는 날들이 더러 있다. 나의 무의식적인 성질 때문에, 또는 그렇게 믿을 수가 없어서. 이럴 때는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황한 것이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청자의 존재가 설득이 되고 확신이 되며 믿음이 된다. 마치 아브라모비치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다 또 다른 단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개 예술은 우리가 바라볼 수 없는 것들을 개시함으로써 그 실성을 띤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읽어내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지? 왜 평범한 우리는 마주할 수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거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정말 놓치지 않는다면 예술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하고. 모든 인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많은 걸 만들어낸다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의 미흡은 곧 창조의 근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은 그럴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존재가 불완전한 것은 존재의 다름을 틀리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나와 타자의 경계에서 공감이라는 구실을 만들어주겠지. 이걸 바라보는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게도 하고, 심지어는 같이 존재하지도, 그 사실 조차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테다. 우리가 쉬이 읽어낼 수 없을, 또는 영원히 읽어내지 못 할 시선을 만들어내는 일은 내 말 좀 한 번 들어달라는 아름다운 절규이니. 다를 것 없지만 다른 존재들의 생애는 이토록 고달프며 모쪼록 갸륵하다 칭해진다.


우리는 요즘의 추운 날들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춥게 입으면서도 한 번 더 걷고싶다 생각하지. 잔뜩 떨어져 짓밟힌 낙엽들을 괜히 몇 번 더 꾹꾹 밟았다. 이러면 아주 몇 번은 덜 밟히고도 빨리 썩어 사라져버릴테니까. 조금은 덜 아프고 없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겨울이란 건 역시 품이 많이 드는 날들이다. 아는 지도 모를 얼굴들을 상상하고 잘 지내나 걱정해본다. 옷은 나보다 훨씬 따듯하게 입고 잠들기에 쉬운 방에서 편히 지내길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춥다..’는 말 한 마디로 이런저런 단상들을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이 것이 나를 차가운 공기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난 여전히 그들을 생각하고 당신들을 생각한다. 이번주와 다음주에 볼 근사한 영화의 티켓 세 장에 든든함을 느끼기도 하며. 생은 얼어 무감각해진 발 끝에 따듯한 바닥 한 번 닿이는 걸로도 충분히 생경하다. 이렇게 단순한 우리네들은 퍽 다정함이 필요하다. 그 필요함을 안다는 누군가 있다면 이번 겨울 한 철 나기에 더할나위 없을 듯 하다.

나의 걸음이 당신들에게 그렇게 닿길 바란다.

자주 걷고 자주 들여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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