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그랬다, 우리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그랬구나>, 더 페이지 갤러리 (2024)

by 강조

(2024-2 종교와 예술 과제)


높은 층고, 그리고 밝은 조명 아래 비춰지는 여자들의 맑은 증언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와 연대를 마주하는 젊은 여자들.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읽어낸 것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았을 때였다.


얼마 전, 성수의 더 페이지 갤러리를 다녀왔다. 일본군 ‘위안부’의 연구소와 여성인권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열린 전시를 위해서였다. 그리 넓지만은 않은 전시장이었으나, 높은 층고가 두드러지게 우리와 작품들을 내리쬐고 있었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높은 문이 열리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세 개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1900년대 초기 서양에서 만들어진 일제의 이미지를 활용한 포스터들, 그리고 그 위에 선명한 채도로 새겨진 일제의 수탈 곡선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를 마주 보고 있는 또 다른 벽면에는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저항하고 사건을 알리고자 했던 몇 십 년 전의 흑백 영상이 여러 화면에서 재생되고 있었는데, 걸려있는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다름 아닌 현재의 성착취, 예컨대 딥페이크에 대 해 시위하던 여성들의 녹음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공간을 지배하던 소리는 그 안 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간헐적으로, 또는 긴장하듯, 또는 발악하듯 들려오고 있었다.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은 단순했다. 자신의 얼굴을 반을 가릴 만한 불꽃 뒤에서 무언가 를 읽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일순 등장하는 흐리고 고요한 바다의 쇼트. 잠시 어두웠던 공간을 지나 2번째 홀로 이동하는 그 골목 같은 길에는 세계 각국의 평범한 집들의 사진이 몇 점 걸려있다. 그 집들을 뒤로하면 우리 앞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연대와 증언, 그리고 어느 단어로도 확실히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투쟁의 역사를 정리한 연표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로하고 기억하듯 그녀들의 목소리와 함께 걸린 회화와 사진들. 넓지 않은 그 공간에서 몇 시간을 거닐었다. 그랬듯 늘 밝았고, 밝아야 할 그 공간에서 말이다. 나는 그 공간이 왜 마냥 다정했을까. 영원히 잊지 않길 바랐을까.


대개의 작품들의 경우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가 마냥 밝지는 못 했으며, 그들의 몸이나 뇌리에 새겨진 그 상처와 고통을 우리는 가시적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후손의 의무감일 테다, 그리고 공감의 표시일 테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그 전시에서는, 어떠한 가시적인 폭력도 없었다. 어둡지 않은 그 공간에서, 피 흘리는 상처는 없었다. 대신 그들이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이 있었고 우리가 바라보지 못했던 피해의 국면을 새롭게 시각을 변환하면서 바라보기를 원했다.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공감이고 의무였다.

예컨대, 앞서 언급했던 불꽃 뒤에 있던 남자의 영상이 있다. 이 남자가 중얼대듯, 또는 직시하듯 내뱉고 있던 말들은 일제 만행의 증언들이었다. 그러나 이 남자에게는 일종의 기억 장애가 있어서, 자신이 말하는 것들을 조금씩 잊어가며, 그렇기에 자신의 기억에 대해 화를 내듯 증언을 외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증언의 내용은 어쩔 수 없듯 꽤 잔인하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계속해서 그 증언을 되풀이한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 작가는 이 지점을 꼬집고자 했다. 왜 늘 이러한 피해를 직시하는 것은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이러한 역사를 늘 반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피해자의 몫일 수밖에 없는가. 따라서 이 작품은 가해자들의 시각의 변환을 요구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힘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처사를 보낸다. 그리고 평범해만 보이던 그 집들의 사진은 사실 세계 각국에 소재하고 있던 위안부 수용소의 모습이었으며, 안 쪽 방들에서 재생되고 있던 영상에 서는 특정할 수 없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연무들을 배경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이 캡션으로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 피해자의 화면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보지는 못 했다. 예 술만이 그 자리에 서서 관객에게 무언가를 바라듯 서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알아채고 감각하기를 원했는가.

우리에게 역사가 전해져 내려온 방식은 일종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전언하기 위해 동상을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제작하며, 위인전이라 불리는 기록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후대들에 있어 우상화된다. 역사는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사람들에게 기대되는 한 이미지로서 작용되길 바라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상징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제의적 가치를 지닌 이미지가 되어 우상화와 함께 신성을 부여받는다. 우리는 우상화된 역사에 있어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길 기대하는데, 그러한 상징은 일종의 신성함이 되어 공격 불가능한 영역을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신성함을 후대의 방식으로 숭배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주 커다란 동상이 되어 서울의 중심부를 지나는 도로 위에 우뚝 서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만질 수 없다. 쓰다듬을 수 없으며 신성을 부여받은 그들에 함부로 다가설 수 없다. 우리는 밑에서 위로 그들을 올려다보아야 할 뿐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를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후손으로서의 우리만이 남게 된다. 역사를 읽는 주체가 우리여야 함을, 그들을 기억하는 주체가 우리임을 잊지 않았는가. 우리에겐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인권 문제와 결부되어 현재의 우리가 이어나가야 할 걸음으로 연결되는 것들이 잔존해 있는 바, 우리는 그들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 이러 한 지점에서 이 전시는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설 구실을 마련하고 역사를 읽는 방식에 있어 조금 더 다정한 시각을 마련한다.


그렇다, 사실 이 전시에서 요구되는 것은 역사적 상상력이다. 연표 등,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기재를 요구했던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의 조소나 회화, 또는 사진 작품들은 직접적이지 않았다. 이는 예술 작품에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모호성이나 정의 불가능성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으로서의 직접적임이었다. 그것은 ‘상상력’으로서 해설되는 시각으로서의 역사를 바라봄과 예술로의 적용이었다. 우리가 보통 어떤 사건들이나 타자들에 있어 빈틈없이 완벽하게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이는 역사를 읽어내고 바라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에게 있어 그 지점을 메꾸도록 기대하게 한다. 현실의 개시, 즉 우리 가 인지하지 못하는 측면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로서 예술이 작용한다 는 것이다. 예술에 의해 유발되는 상상으로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아도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그렇기에 상상력이란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예술 작품들에 일반적으로 부여되는 제의적 측면을 붕괴시킨다. 작품에 부여되는 단일성, 또는 개시로서의 특 성이 잠깐 현시된 후 그 이행이 관객으로 전이된다. 사회, 제도의 비판 등, 그저 작가의 의도가 관객에게 전달되어 그를 인식하기만 하는 것을 넘어 곧 그 의도는 관객의 생각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의 공감으로 칭할 수 있는 상상력을 유발하는 예술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직시를 넘어 역사와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신성이라는 관객 스스로에 내재한 틈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들에 공감하고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관객 스스로가 모색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 있어 ‘우리가 그랬구나’에서는 예술이 매개가 되어 신성의 전달을 막는다는 것이다. 본래 예술이 동상, 영화 등으로서 역사의 신성을 전달하는 일종의 성물의 역할을 하는 매개체와도 같았다. 그러나 물질성에 의탁한 상징성으로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신성하게 보존된 유물론적 흔적 대신, 손에 잡히지 않는, 물질적이지 않은 모호한 방식으로 내면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그의 상상적 재구성을 통해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폭력을 마주하는 일은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늘 그래왔다. 해야 할 일임에도 틀림없었다. 그러나 서술되는 역사 이상의 것이 이제는 필요하다. 예술적 맥락에서의 성물의 해체를 통해 사건의 물리적 잔해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상상과 공감을 통해 더 깊이 사건과 연결되고, 그러한 고정된 형태로 기억하는 것을 해체해 이를 바라보는 우리와 관객들에 기억의 역동성과 개인적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한 신성화의 작업은 늘 그래왔듯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만들어온 바, 불변의 가치로 간주되었던 피해자 서사의 신성함은 우리의 물음과 상상으로서 그러한 영역을 흔들어 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져야 함을 이 전시에서는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체의 신성을 해체하되 예술로 대두되었던 성물으로서의 역할을 해체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읽어내고 상상하며 공감하는 주체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즉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 있어 예술가에 의도에 의해 유발되는 상상력을 통해 가시적인 폭력을 배재하고, 상징성이 되었던 피해의 지점을 동정의 방식이 아니라 공감을 유도한다. 또한 여성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써 이어졌던 이러한 목소리들에 더 힘을 실는다. 고통의 감각이 고통의 인지로 바뀌는 순간, 개인적 고통은 사회적 고통이 된다. 신성시되었던, 그래서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고 드러내길 꺼렸던, 마치 필연적인 운명이라는 듯 스스로를 성역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러한 고통에 최대한 다가서야 함을 느낄 때, 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그들을 상상한다. 자기 자신의 신성함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성 함의 붕괴의 과정을 또 다른 막으로 덧대어 공격 불가능한 새로운 신성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그녀들의 마음을 상상한다. 폭력과도 같은 신성을 상상을 통해 조심스레 벗긴다. 더 이상 그 녀들만의 몫이 아님을 공감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에 붙어있던 영상들을 기 억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이 피해를 증언하거나, 또는 즐겁게 여행을 다니는 그 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현재 여성들의 목소리다. 이제야 마음을 놓고 여행을 다니는 그녀들의 모습,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내야 했던 목소리들.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딥페이크, 여성 혐오 범죄, 수요 집회 등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성들, 그리고 우리들. 여성 인권 운동의 한 대표적인 맥락으로서,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준 목소리들은 나눠지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연대의 연속성인 것이다. 단순히 피해자들을 동정하거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멈춰서 있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녀들과 동시대성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역사가 그저 상징이 아님을 목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은 그녀들과 우리 사이에 이해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그 틈을 채운다. 이 전시는 그러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붕괴된 신성 대신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그러 한 해체가 단순히 신성 또는 성물을 파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본질을 내면적 경험과 관계, 그리고 상상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해체된 신성 속에서 상상에서 나아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새로이 걸음을 딛길 원하는가. 어떤 것을 원동력 삼아 새 연대로 이어질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새로운 성스러움을 모색해야 한다. 말로 형언할 수 없던 힘, 이 전시가 예술로서 관객에게 바랐던 방향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성스러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전통적인 성역으로 여겨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과도 같은 성스러움이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주체가 된 ‘우리의 내면’에 성스러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종교적 성스러움은 외부의 초월적 존재-신 등-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관객 개개인의 내 면적 참여와 공감을 통해 성스러움은 새롭게 창조된다. 평범한 집과 다를 바가 없으나 강제적인 성착취가 이루어졌던 무섭게도 고요한 여러 집들의 사진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침묵하는 모습들이지만, 캡션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그 공간을 상상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서 그곳 사건의 재현은 이미지화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상기된다. 공감하는 주체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나로서 그들을 내면화한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폭력의 묘사가 상실되었으나, 그렇기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며 공감하는, 해체된 외부의 신성을 통해 새로이 형성된 내면의 성스러움을 내면화하는 과정이 다. 또한 이는 관객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적 변화로 확장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종교의 성스러움이 공동체를 한 데 묶는 결집의 역할을 했다면, 우리가 읽어내는 성스러움은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촉진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단순히 관람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이미지와 현재 여성들의 목소리가 중첩되었던 작품에서 목도했듯 새로운 연대로 나아가며 그 뜻을 잇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인권으로의 운동과 걸음 은 전신이 되어 새 걸음을 내딛는 이들에게 성스럽다 속삭인다. 서로의 내면의 성스러움을 읽 어내고 듣는다. 새로움은 사실 선천적임을 인지해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상상과 공감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과정을 예술은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 뿐 아니라 우리 내면엔 이미 성스러움 이 존재할 것이다. 불가침의 영역,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 이러한 성스러움으로부터 모든 가능성은 시작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주관하던 위안부가 있었다. 일명 ‘기지촌 여성’들로 불리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성병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여성들을 가둬놓던 성병 진료소가 동두천에 있었다. 그러나 동두천 시청에서는 이를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철거하고자 하고 있다. 이 전시관의 끝에 닿는 곳은 결국 이곳이다. 그 여성들과 여성들이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맑은 웃음의 늙은 여인과 그 옆에 걸려있던 상품이 성매매인 쿠폰의 사진. 그리고 모호하게 흘러가는 배경을 뒤로한 여성들의 증언이 뜨던 영상. 그리고 현대 여성들이 겪는 두려움-여성 혐오 범죄, 딥페이크 등 -에 대한 그림들. 결국 우리가 맞닿은 끝 아닌 끝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제시이고 물음이다. 언젠가는 끝이 나리라 믿고 마는, 여성들의 연대와 발걸음. 신성함이 해체되었기에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로 다가오는,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여전한 문제들과 새로운 문제들. 예술은 이러한 흐름을 잇고 새로운 시각을 촉발하여 새로운 성스러움을 만들어낼 것이다. 결국 상상력은 우리의 끊이지 않고 나아갈 힘이 될 것이다. 그렇듯 그들로부터 우리까지 이어지는 연대는 결국 초월하여 새로운 문제들로, 그리고 여전한 걸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신성함이라는 공감의 틈을 메꾸고, 그들과 우리의 방향성에 성스러움을 부여하는 것.

<자매들은 이겨내자고 약속했다>(1992)의 단단한 모습들은 성스럽다. 우리의 모습이며 그들의 모습이자, 새로운 믿음을 약속하는 그 눈빛. 그 작품 앞에서 차마 빨리 뜰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들이 그 눈빛을 지니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왔을지 감히 내가 속단할 수 없어서. 공감은 결국 하나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대개의 예술 작품들, 그리고 역사에 부여된 신성은 이를 어렵게 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들이 완벽한 신성을 가졌다고 믿는 태도는 여전히 공감하며 나아가야 할 연대를 향해 돌을 던진다. 아프다고 생각하며 머무르기엔 나아가야 할 믿음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진 내면의 신성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걸어간 그녀들의 걸음이 우리를 위로하고, 또 우리가 그녀들을 위로하면 되지 않 는가. 예술은 그렇게 우리의 매개체가 된다. 새로운 시각을 촉발하게 하고 새로운 힘과 믿음을 준다. 이 전시는 이러한 점에서 다정한 시각을 선사했다. 공감과 상상력, 그리고 새로운 성스러움로의 이동.


전시장의 높은 천장의 조명들은 아주 밝았으며 따듯했다. 모든 것을 비춰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그랬구나’, 하고 그들이 읊조리면 우리가 그녀들을 안아줄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우리도 그랬어요’, 하고 우리가 내뱉는다면 그녀들도 어디선가 손을 뻗고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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