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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울 Sep 27. 2020

그저 동화 같던 순간

택시의  인연

밤에 피는 이야기

작은 시내에서 10분 더 들어가야 나오는 깊은 산골마을.

10분 거리 택시비가 보통 8000원이 나오곤 한다.

버스는 하루에 10번 남짓, 약 2-3시간에 한번 있는 꼴이기 때문에 한번 놓치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버스 인생 언제 끝나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몇 년 전 유난히 하루가 삐걱삐걱 안 풀리던 날이었다.

하필 버스까지 놓쳐버린 날. 심지어 아빠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와 버스까지 놓쳐버리네. 오늘 진짜 날인가?'

학생인 나에게 택시비로 8000원을 쓴다는 것은 마치 길바닥에 돈을 버리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친구를 불러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하거나 하염없이 주변 초등학교 운동장만 뺑뺑 돌았겠지만 그날은 너무 힘들었기에 택시를 타는 사치를 부리고자 했다.

덧붙이자면 혼자 스스로 택시를 타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조차 없는 특이한 일이었다.


작은 동네이기에 택시 잡기가 굉장히 힘든데 그날 다행히 한 택시를 바로 탈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ㅇㅇㅇ으로 가주세요."


한숨 같은 목소리로 말했더니 푸근한 인상의 기사님께서 놀란 듯 돌아보시곤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셨다.

당황스러웠지만 반응할 기운도 없었기에 얼떨떨한 미소만 지어 보였지만 아무 말없이 택시는 출발했다.

그렇게 약간의 정적 후 기사님께서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 네 안녕하세요..?"

"어머님은 잘 계세요?"

"네.. 잘 계세요!"


저 아세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워낙에 마당발인 아빠 때문에 이런 상황이 종종 있었기에 아빠 친구분이시구나 싶었다.


"저 기억 안 나시죠?"

"음... 혹시 아빠 친구분이신가요..?"


기사님은 하하하! 크게 웃으시더니

"당연히 기억 안 나겠죠. 학생이 태어난 날에 함께 한 거니까."


순간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머릿속에 한 번에 입력되지 않았다.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굴리는 날 힐끔 보더니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진통이 오셨을 때, 그러니까 학생이 태어날 때 내가 병원에 데려다줬어요.

어휴, 어찌나 난리였던지. 십몇년전인가 싶은데 아직도 생생하다니까요!"


순간 속에서 뭔가가 울렁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의미로, 말할 수 없는 따뜻한 감정이 속부터 올라왔다.


"와 정말요?? 세상에 너무 신기해요!"

"허허 그동안 한 번을 안 타더니 너무 반갑네. 오죽하면 제가 집주소를 기억하고 있겠어요"


기사님께서 그날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주셨다.

그것은 내가 정확히 엄마께 들었던 이야기와 같았고 기사님은 마치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난 그날, 집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진통이 온 엄마.

아빠는 일을 하던 중이었고 너무 급했기에 할머니와 택시를 불러 1시간 거리의 대학병원을 30분 만에 달려서 갔다며 엄마가 생생하게 들려줬던 그때의 긴박함.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고 세상에서 가장 긴 30분이었다는 이야기.


"택시를 하면서 그렇게 빨리 달린 적은 처음이었어요 학생. 허허"

.

.

.

"사실 오늘 너무 힘든 날이었어요. 기사님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에요. 신기하고 기뻐요!"

가까운 사이에도 못할 말들, 쑥스러운 말들이 편하게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만날 인연은 만난다는 것처럼 낯선 유대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저 악수 한 번만 해도 될까요?"


그렇게 악수를 하고 명함을 받았다.

모르겠다. 그냥 악수가 하고 싶었나 보다.

기사님은 앞으로 버스를 놓쳐 곤란한 상황일 때 무료로 태워주시겠다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짧은 10분이라는 시간.

기사님의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 흥분된 목소리로 서로 나눈 대화들, 마지막 기사님의 두툼하고 따뜻했던 손 모두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날  위로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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