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공포의 마지막 버스
해가 짧아지는 겨울철, 통금시간은 항상 7시였다.
정해진 시간은 아니지만 마지막 8시 버스를 타게 되면 상상을 초월할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밝을 때 집으로 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으스스한 나무들, 정체모를 소리들, 무덤, 다 쓰러져가는 폐가..
그러다 갑자기 고라니라도 튀어나오면 심장이 멎는다.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10분은 체감상 1시간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겁이 너무 많아서 밤에도 거실 불을 켜고 잤던 나에게 깜깜한 밤거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걸어가는 날이면 다들 기절초풍하곤 했었다.
건장한 여자 4명이 벌벌 떨며 꼭 붙어 노래를 부르며 갔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터 친구들은 어두워지면 자고 가라고 흔쾌히 침대를 내어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시절은 학교에 맞춰 항상 막차를 타야만 했는데
같은 길을 매일 걷는다고 공포가 사라지진 않더라.
그저 살기 위해 나름대로 공포를 떨쳐내는 방법을 찾았었다.
강렬한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최대한 당당히 펴고 비장한 표정으로 난 겁나 세니까 건드릴 생각 집어치워라 하며 빠르고 씩씩하게 걷는 것이다.
(그때는 귀신에게 어필한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구간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게임 퀘스트 달성한다는 상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집에 도착하면
"좋아 오늘도 무사히 임무를 마쳤군."
하며 전장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물 한잔 벌컥벌컥 마시고 마무리한다.
뛰어가는 방법은 쫓기는 느낌이 들어서 역으로 더 무서워져 포기했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부모님이 마중을 나와주셨는데 어둠 속을 걸어오던 아빠를 보고 기절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빠는 입에 거품을 무는 나를 보며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듯 웃곤 했다.
아마 그 순간을 위해 귀찮아도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는 그 밤거리를 여유롭게 걸어오는 부모님이 정말 신기했지만
나이가 드니 정말 그 길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어두울수록 달빛이 예쁘고 밤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도 나름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귀신이 무서워서 새벽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던 아이는 귀신보다 무서운 건 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젠 유유자적하게 밤거리를 즐길 만큼 강한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