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역뿌리 Apr 07. 2018

#82 <쓰리 빌보드> 피해자의 분노를 다루는 방식

<쓰리 빌보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강간당하며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월러비?'


주인공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매사에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자동차에 음식을 던진 학생들을 발로 차버리는가 하면 민원신고한 치과 의사의 엄지손톱을 뚫는 기이한 행동까지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인물이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주변인들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의 유일한 가족인 아들조차 이제는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고, 한때 함께 딸을 키운 전 남편조차 그녀가 세운 쓰리 빌보드를 불지르기까지 하니 말 다 한 셈이다. 이미 잊혀진 사건에 대해 죽은 영혼이 깃든 사람 마냥 이곳저곳 날뛰는 밀드레드의 모습은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


관객들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영화는 흘러갈수록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분노로 인한 그녀의 강경한 태도와 거침없는 행동에 힘을 더 싣는다. 췌장암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월러비(우디 헤럴슨)' 경찰 서장에게 죽기 전에 사건은 해결하라고 독촉을 하는가 하면, 야밤에 경찰서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그녀의 분노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화염병을 던지는 밀드레드. <쓰리 빌보드> 공식 스틸컷.


돌이켜보면 그녀의 분노는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도달하게 된 당연한 결과다.   

 
1. 딸이 강간으로 살해당했다.
2.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경찰은 사건을 포기했다.
3. 경찰은 피해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4. 수개월이 흘렀다.
5. 결국 피해자는 직접 나서기로 했다.


제도가 개인을 위협으로부터 구제하지 못한다면 당사자가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치 해결하지 못한 게 마치 자기 탓인 것 마냥 죄책감으로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밀드레드가 분노하는 이유 속에는 제도를 개선하거나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것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거창한 목표가 담겨있진 않다. 단지 화가 난 것뿐이다. '다른 업무 때문에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며 강간 사건을 미해결인 채로 내버려 두는 경찰의 본새가 괘씸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범죄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는 납득 갈 만한 '대의적인 이유'가 있어야 피해자 행세가 가능했고, (누군가 피해자 매뉴얼을 정해놓지도 않았지만) 그 결과로써 피해자의 행동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것'에 그쳤다. 억울함이나 분노와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 기폭제가 되어 독단을 넘어 악하기까지 한 행동을 보이는 인물,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를 주내용으로 끌고 가는 영화는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 씬에서 개과천선한 경찰인 '딕슨(샘 록웰)'과 함께 용의자를 죽이러 가는 와중에도 밀드레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를 죽일 것이냐는 딕슨의 물음에 '가서 생각하지 뭐'라고 흘리듯 대답한다. 애초부터 그녀의 머릿속에 가해자에게 복수할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분노 그 자체가 그녀의 수단이자 목표였다.


'강간당하며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월러비?'


세 개의 광고판이 파격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갱스터의 낙서와 같은 휘갈긴 듯한 표현들이 고발용 광고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좀 더 부드러운 단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끔찍한 감정의 몇 천 배나 되는 불안하고도 무기력한 감정들을 피해자는 매일 마주한다. 문자보다 실제에서 감정은 절실히 느껴지는 법이니 얼마나 하루하루가 공포스러웠을까.


그녀의 분노, 그녀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 피해자가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나 목표에서 있어서 옳고 그름을 우리가 판단할 수 있을까. 사건을 겪은 후 피해자가 지녀야할 태도도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것인가.   


쓰리 빌보드는 그녀의 분노 표현 방식이었을 뿐이다. <쓰리 빌보드>의 공식 스틸컷.


작가의 이전글 <레이디 버드> 자유롭게 사는 것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