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6일
# 생의 한가운데에서 3번의 인연
인연 1.**
세코날' 마흔 알. 전혜린. 1965년 1월 10일, 31세. 그리고 만들어진 천재.
어떤 책들은 우리를 단숨에 사로잡아 평생 놓아주지 않습니다. 전혜린이 그런 작가였어요. 성균관대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아직 그녀가 제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지 몰랐습니다.
'우수 서린 무서운 눈동자로 그 날카롭고도 매혹적인 에스프리를 쉴 새 없이 발했다'라고 작가 이봉구가 회고했던 그 여자. 불문학을 가르치셨던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서른한 살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자되던 스캔들. 스무 살 제자와의 사랑. '독수리처럼 날아왔던 사랑은 참새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라고 그녀는 썼지요.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나를 살게 해 줘."
그 절규 같은 문장들이 청춘의 저를 얼마나 뒤흔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시절 저는 그녀의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통해 청춘의 신열을 달래고 있었어요. 여성이라면 전혜린을 거쳐 더 깊은 여성성을 발견했을 테고, 남성인 저는 몸살 앓는 청춘의 열병을 그녀의 글로 식혔습니다.
물론 그 시절의 저는 다른 방법으로도 뜨거운 몸을 달랬지만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것들이 '문학 이전의 습작 수준'으로 치부되는 에세이와 일기, 그리고 편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기억의 적자생존이 소년을 청년으로 만들어가던 소중한 문장들이었어요.
정액을 닦아내던 티슈 조각처럼 소비되었지만, 그 남겨진 흔적은 더 늦기 전이었다면 하나의 생명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소비되면서도 동시에 생성되는, 사라지면서도 동시에 남는 그 무언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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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2.**
한국의 국적을 가진 남자라면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예외 없는 원칙. 군대라는 곳에서 저는 다시 그녀를 만났습니다.
때우고 나간다는 국방부 시계와의 전쟁. 그저 멍하니 바보가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위 선임이 던져주며 "보려면 봐. 나는 재미없더라" 하고 건네받은 선반 위의 그녀. 전혜린의 그녀.
저는 그녀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한동안은. 야상 주머니에 꽉 들어찬 적당한 조임과 긴장. 꽉 찬 느낌, 충실감. 뭔가를 느끼고 있었어요.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왜 사는가는 고사하고 살고 있다는 감각조차 무뎌지고 있는 군대에서 실존의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체성을 다시 고민하는 정도, 독서 편력을 자극하는 정도. 삭막한 군대에서 얻어진 졸병 중의 지적 인연이었어요.
그렇게 저는 그녀와 이별을 했습니다. 사치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하면서요.
첫 번째의 그녀는 첫사랑이 아닌 첫 여자처럼 생소했고, 두 번째의 그녀는 사치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런 사치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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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3.**
여자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녀. 저를 진정으로 성장시킨 건 니나였어요.
두 번째 사랑의 그녀처럼 잊혔다가 다시금 나타난, 길을 걷다가 마주친 두 번째 사랑의 그녀처럼. 어느 날 제 앞에 그냥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잘 지냈어?" 이 물음까지도 생경스러운 당신.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여주인공 니나와 니나의 언니, 그리고 니나를 사랑하는 박사 슈타인의 이야기입니다. 슈타인은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지식인이며, 동시대 지배층의 존경까지 받는 명사지만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권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그는 오로지 니나를 보면서 삶의 반짝이는 열정과 기쁨이 무엇인지 느낍니다. 지금의 저처럼요.
어느 날 그런 그가 니나에게 삶이 무의미하다며 탄식할 때, 니나가 대답하는 말이 이 성숙한 그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
이 문장이 얼마나 깊은 지혜를 담고 있는지요. 삶은 객관화시켜 그 의미를 깨닫는 무엇이 아니라 생의 한가운데에 자신을 내던지고 느끼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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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과 신문이 가로챈 이 미천한 삶의 표면에서 거짓 냉소로 일관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걸 만한 위험이 없는 삶이란 아무 가치가 없어"라고 말하며 생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용기. 니나는 우리에게 그런 용기를 보여줍니다.
니나는 나치시대를 배경으로 때로 위험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이카루스처럼 삶의 정점에 돌진해요. 반면 슈타인 박사가 하는 것이라고는 니나의 삶을 그저 기록하는 것뿐입니다. 그 열정을 지켜보지만 한 번도 부여잡지 못한 채 죽어가게 되는 안타까운 아이러니. 결국 슈타인은 자신을 타자화함을 벗어나지 못해요.
지금의 저처럼요. 열정은 지켜보지만, 그것을 부여잡기에는 너무 노회 해진 것 같습니다. 부나방처럼 살지 못하고 부나방을 멍하니 지키게 되는 것이죠. 그만큼 그녀는 뜨거운데, 저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기록할 뿐입니다.
하지만 기록한다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겠지요. 누군가의 열정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가 영감을 받는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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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떨어지다. 배는 다소 고프지만 나는 즐겁다. 오늘은 가을 하늘이 멋이 있었고, 나의 머리는 니체와 루 생각으로 가득 찼으니까."(1958년 11월 5일)
전혜린의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생각해요.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 하고요. 돈이 떨어지고 배가 고파도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과 사유의 충만함으로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요.
그리고 2015년 7월 6일, 밥 굶은 제사장인 저. 여전히 책을 읽고, 기록하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시공간을 뛰어넘어 누군가의 삶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