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4.*
# 천자연적
*201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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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미학을 담은 작은 연적 하나
피천득 선생이 쓴 「수필」이라는 글에 '천자연적(天字硯滴)'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아주 재미있다.
천자연적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천(天)' 자 모양을 한 연적이다. 하지만 피천득 선생이 주목한 것은 그 모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미학이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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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함 속의 작은 파격
여기서 정연히 달려있는 꽃잎들은 '일상'을 뜻한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평범한 삶의 모습들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의 리듬.
그런데 그 가운데 파격적으로 구부러진 꽃잎 하나가 있다. 바로 이것이 수필의 소재다. 일상 속에서 문득 발견하게 되는 작은 특별함, 평범함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
중요한 것은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라는 점이다. 너무 극적이거나 인위적이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마치 연꽃잎이 바람에 살짝 구부러지듯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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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
이것이야말로 수필의 미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명문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이 소설이나 시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은 큰 파격을 다룬다. 드라마틱한 사건, 갈등, 반전을 통해 독자를 사로잡는다. 시는 언어의 파격을 통해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하지만 수필은 다르다.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평범함의 질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작은 깨달음을 주는 것이 수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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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찾는 글의 단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관찰에 있다. 피천득 선생이 연적 하나에서 수필의 본질을 발견했듯이, 우리도 일상의 사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표정, 카페에서 들린 누군가의 대화 한 토막,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오래된 책에서 발견한 메모 한 줄...
이런 것들이 모두 '약간 옆으로 꼬부라진 꽃잎'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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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연적의 교훈
결국 피천득이 천자연적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다.
수필은 거창한 주제나 특별한 경험을 다루는 글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작은 파격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글이라는 것.
그 파격이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좋은 수필이 탄생한다는 것.
천자연적 하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문학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