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치든... 나의 폭력성

2013. 4. 24. 16:18*

# 망치든... 나의 폭력성

망치든건축가 hyojoon*

2013. 4. 24. 16:18*


*



볕 좋은 오후다.


나는 이곳에 '툇마루'를 꾸미고 싶다. 겨울을 대비해서 폴딩도어도 설치하고. 그런데 이게 망치든 놈의 폭력일까?


참 웃긴 일이다. 집을 고치고 싶다는 욕망을 폭력이라고 부르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기존의 공간을 부수고, 뜯어내고, 새로 만드는 일. 이게 폭력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볕 좋은 오후에 제사장이 잠깐 꾼 백일몽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확한 정의다. 나는 지금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


*


좁은 집에 좁게 사는 미학을 강요한다.


이게 내 현실이다. 넓은 집에서 넓게 살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까 좁은 집에서 좁게 산다. 그런데 이걸 미학이라고 포장한다. 참 눈물겨운 일이다.


미니멀 라이프? 작은 집의 미학? 다 개소리다. 그냥 돈이 없어서 좁게 사는 것뿐이다.


툇마루라는 것도 웃기다. 살림집에서는 전면에만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우리 집 같은 경우는 툇마루고 뭐고 만들 공간도 없다.


그냥 뛰어?


맞다. 그냥 뛰는 게 낫겠다. 툇마루 만들 돈으로 치킨이나 시켜 먹자.


*


망치든 건축가의 고백*


나는 망치를 든 건축가다. 하지만 정작 망치로 뭘 부술 수 있는가? 내 집 하나 제대로 고치지 못하면서.


건축가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남의 집은 멋지게 설계해 주면서, 정작 내 집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의사가 제 병을 못 고치고, 요리사가 제 밥을 못 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꿈은 꾸어야 한다. 비현실적이라도, 백일몽이라도.


볕 좋은 오후, 툇마루에서 차 한 잔 마시며 폴딩도어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는 꿈 말이다.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도 모르잖아. 그때까지는 그냥 뛰면서 기다리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