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결의 동의와 정의란 무엇인가?

2012. 7. 31. 2:10

# 다수결의 동의와 정의란 무엇인가?

망치든건축가 hyojoon*

2012. 7. 31. 2:10*


*


오늘의 뉴스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평소에는 관심 없던 연예계의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것은 단순한 연예계의 스캔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집단 폭력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따돌림과 배제, 소위 '디스'라고 불리는 현상들.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


다수의 폭력, 집단의 논리*


자신들의 기준에 비추어 못된 행동을 하는 동료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것. 그리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다수결 동의가 이루어지면, 그것이 그 집단에서는 '정의'가 되어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파시즘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다. 히틀러의 나치도,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도, 군사독재 시절의 협력자들도 모두 이 같은 논리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공동의 선이라는 미명 하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에서 10만 부, 우리나라에서 100만 부나 팔린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정의에 목말라 있었다. 하지만 샌델이 제시한 '공동의 선'이라는 공동체주의 이론도 결국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화두만 던져놓을 뿐이다.


왜냐하면 정의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사회, 그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역사가 증명하는 진실*


역사를 보라. 조선 시대의 양반들에게는 신분제가 정의였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에게는 황국신민화가 정의였다. 군사독재 시절의 권력자들에게는 반공이 정의였다.


티아라 사건의 가해자들에게도 그들만의 정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살인의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논리와 합리화가.


티아라 소속사의 사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만의 판단과 논리에 따라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것이 집단의 논리가 개인을 짓밟는 순간이다.


*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자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직에서, 사회에서, 따돌림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폄하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행동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집단 내에서 동의된 이런 행동들이 그 집단에서는 '정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파시스트다. 상황과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지 집단의 논리에 휩쓸려 타인을 짓밟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다수의 논리가 언제나 옳다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수가 틀릴 수도 있다는 비판적 사고를 가르쳐야 할 것인가?


강자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 생존의 지혜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후자다.


*


끝나지 않은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 샌델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의심하는 것이다. 비판하는 것이다.


다수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양심과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의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망치든... 나의 폭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