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서

2012. 11. 29. 16:34*

#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서

*망치든건축가 hyojoon*

*2012. 11. 29. 16:34*


*


타는 노을도 없이 날이 저문다


언덕에 앉아 노을을 기다렸지만

쑥부쟁이 한 송이 꺾어 냄새를 맡고

잎을 뜯어 한 장 한 장 뿌려본다

잎이 마르고 겨울이 오도록


몸이 식으면 등줄기에서 한기가 돈다

뛰다가 넘어진 상처에서 새삼 아픔이 밀려온다


아물지 않은 딱지를 떼다가 덧난

욕이 되었거나 빚이 되었거나

두고두고 삭여야 할 그리움이 되었다


*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한다는 이유로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아 돌아보니

누군가 있기는 있는 건지

누구를 잃기는 잃은 건지


마음을 관통하고 휑하니 가버린 이는

홀로 흩날리는 잎처럼

아름다웠다가 향기 잃어 시들고

남이 되어버린 가슴들은

어차피 타인이 아니었던가


*


뛰다가 넘어진 자리에서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시

주머니를 뒤져 꼬깃 담배를 찾는다


소리 죽여 불러볼 이 없는 황량함이

다시 견딘 하루를 낯설게 한다


겨울바람에 잔뜩 움츠린 어깨가

아직은 나를 지탱한다

탄불 꺼진 썰렁한 방처럼

마음은 쩡쩡 얼어붙어

봄이 오기 전에 쓰러져

불 밝힌 상여가 얇은 살얼음을 지친다


*


아직 어른거리는 봄은

팽팽 당겨진 줄처럼

언제인가 툭


눈 쌓인 나무 우듬지에

감당 못해 쏟아지는 무게를 더해

일순 터지고 목이 잠겨

이른 열병을 지독히도 앓아야 할 듯


맞으려 해도

손 내밀 수도 부를 용기도 힘도 없어

탄불 꺼진 빈방에 문 닫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차라리 고통을 못 이긴 눈물을 흘린다


*


이맘때면 한없이 약아지는 마음에

계절은 어김없이 되돌고

잊고 지고

먼 이역으로 돌아누운 세월은

바위 같은 의지를 모래성으로 만든다

술술 허물어져

폭풍처럼 일어선 자신은

바람처럼 흩어진다


위험한 계절의 위험한 그리움

동굴 같은 공허조차 변덕스러워

글로도 말로도 몸부림으로도

토할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응어리


검불더미에 불을 질러

활활 태웠으면 좋으련만


*


귓불이 따가운 거센 언덕에 앉아

술 마신 이처럼

이기지 못한 감정이 솟구친다

사무침은 서로에게 당긴 시위가 되고

살을 맞고도 거두지 못한 목숨이 되어

혼절 속에 깨어난 듯

꾸역꾸역 다 못 삼킨 넋두리


마음을 열어도

열 길 속을 풀어헤칠 강이 없다


지친 육신의

이미 심장이 멎어버린 영혼을 위해

밤새워 폭포처럼 눈물을 쏟아도

애초에 그것은 욕심보다 못한 어리석음


*


그렇지만 이제 조금은 안다

긴긴 겨울 내내

잠들 수 없었던 이 며칠의 끝

나를 감쌌던 슬픔의 이유


지쳐 감당할 수 없는 몸뚱이를 기댈

동목가지처럼 언 손을 녹일

그대 가슴


기꺼이 가슴을 내어

비수 같은 찬 손


이제 체념도 아니고

지천으로 터져 나올 열정도 아니고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아득히 보이는 당신께

메마른 살점을 뚝뚝 띄워본다


*


곧 몇 번의 계절 바뀜과

기다려도 무지개를 만들지 못하는

몸부림에 강물 넘던 떠나버린 날


살벌한 여백 벌판에서

겨우살이로 파랗게 혼자 살아남아

더는 손 쓸 수 없어

마지막 끈을 놓아버려도


이대로 남은 날들을 견딜 힘은


쑥부쟁이 옆에서 원 없이 흔들리다

흔적도 없이 생목숨을

이대로 벌판에 묻었어야 할 듯

타오르는 그대를 두고

영원. 염원.


내내 평안하시길




천수답에서 비를 기다리는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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