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 4:54
삼국지연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장료의 한 마디를 찾기 위해서였다. "세상은 나를 버린 적이 없다, 세상은 나를 가졌던 적이 없으니." 기억이 희미해진 탓에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넘기다가 우연히 다른 구절에 시선이 머물렀다. 줄이 그어진 대목이었다.
청년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노인이 다가와서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청년은 급한 길이었지만 바지를 걷어 올리고 노인을 등에 업었다. 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에서 노인을 내려드리고 인사를 나누려는데, 노인이 말했다. 강 건너편에 짐을 두고 왔다는 것이었다. 다시 업고 가서 그것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이었다.
노인의 말투에는 감사나 미안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한, 명령에 가까운 어조였다. 그런데도 청년은 거절하지 않았다. 다시 노인을 업고 강을 건넔다.
청년의 발바닥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돌에 까지고 벗겨져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청년은 불평 하나 없이, 여전히 공손하게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짐을 찾아다 주고 다시 노인을 강 건너편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때 노인이 물었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너는 어찌하여 손해를 볼 줄 알면서도 나의 부탁을 끝까지 들어주었느냐? 혹시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
거의 추궁조로 물었다. 청년이 대답했다. 여전히 공손한 자세로.
"저는 발바닥이 아픈 것을 참으면서 어르신을 강 건너편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르신의 또 다른 부탁을 거절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한 수고는 모두 헛일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어르신께서는 오히려 저를 원망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고통을 참고 다시 한번 부탁을 들어드린다면 저에 대한 어르신의 감사함은 그 두 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유비의 일화다.
이 일을 통해 유비는 그 노인에게서 귀중한 교훈을 얻었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 이야기는 유비의 정치적 계산과 처세술을 논할 때도 종종 인용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에서 배려라는 개념의 본질을 발견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배려의 일관성이라는 문제를 발견한다.
배려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한 번의 친절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일관된 태도이며, 지속적인 마음가짐이다.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다. 지속성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경우를 목격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중간에서 중단되면서 오히려 원망을 사게 되는 경우들을. 베풀고도 욕먹는 사람들을. 이것은 배려의 불연속성, 즉 일관성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유비의 선택은 어쩌면 계산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계산 이면에는 인간관계의 근본 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 한 번 시작한 선의는 끝까지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그 선의는 오히려 악의가 되어버린다는 것.
이것은 비단 개인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책의 일관성, 약속의 지속성, 신뢰의 연속성. 이 모든 것이 배려의 일관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배려의 일관성이 부족한 사회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다.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회다. 반대로 배려의 일관성이 있는 사회는 신뢰가 축적되는 사회다.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다.
유비가 훗날 촉한의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일관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배려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신뢰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배려의 일관성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순간적인 감정이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시작은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시대일수록 유비의 일화가 주는 교훈은 더욱 소중하다. 배려의 일관성.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이문열의 전집을 넘기며 이런 생각에 잠긴다. 고전 속에는 이처럼 현재에도 유효한 지혜들이 숨어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배려라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자 동시에 사회의 문제다. 우리 모두가 배려의 일관성을 실천할 때, 이 사회는 비로소 신뢰할 만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수답에서 비를 기다리는 제사장처럼, 나는 오늘도 이런 작은 깨달음들을 모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