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 2:12
# 큰딸이 제대로 사고친 날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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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꼭두새벽부터 남들 다 자는데, 이 지겨운 멘트는 언제쯤 바꿀 수 있을까. 어제부터 잠을 못 잤으니 오늘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사실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나.
밤새 일하다가 잠깐 집에 들렀다. 마음이 조금 무거웠지만 애들 자는 모습이라도 보고 가자 싶어서. 그리고 작업실에서 아침해를 맞았다. 오랜만에 보는 새벽이었다.
오늘은... 아니, 정확히는 어제. 우리 큰딸 원소의 중학교 입학식이었다.
아버지라면 당연히 가고 싶었지만, 잘 굴러가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삐걱거려서 뒷수습을 해야 했다. 이제는 조금 부족해도 늦기 전에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는데,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욕심일까, 집착일까.
원소 책상 위의 환경조사서를 들여다봤다. 아버지 직업란에 적힌 "건축가" 세 글자. 과연 나는 이 이름을 계속 지킬 수 있을까. 망치는 들었지만 그냥 노동자로 전락하지는 않을 거다.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이라고 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건강체다. 나는 군대에서도 축구를 안 했다. 다른 사람들은 군대 얘기, 축구 얘기로 밤을 새운다는데, 나는 그런 추억담이 없다.
그런데 싫어하는 과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도덕"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덕? 그런 과목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영어도 국어도 아닌 왜 하필 도덕일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도덕을 싫어한다고 한 사람은 처음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을 나와 작업실로 향했다.
진짜 웃긴 건 아내의 전화였다. 입학식에 다녀온 아내 말로는, 이번 입학생 중에서 "도덕"을 싫어한다고 쓴 아이는 아마 원소가 유일할 거라고 했다.
더 가관인 건, 원소의 담임선생님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젊은 남자 선생님인데 담당 과목이 하필 도덕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과목 중에서 말이다.
이 얘기를 듣고 한참 웃었다. 이 아이, 오늘 제대로 사고를 쳤구나. 완전 홈런이다.
원소의 별명은 까만콩이다. 갤럭시로 카톡을 하면서 요즘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또래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데, 포토샵으로 떡칠한 아이들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딸래 친구들 보고 취향을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원소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이상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이지는 않다.
어릴 때 단발머리로 자르고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집에 들어오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 버스에서 스쳐 지나간 내 이상형과 신기하게 닮아 있었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정말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인데, 정작 본인은 피부색이 조금 어둡다고 사춘기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 피부를 하얗게 하는 수술을 받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예쁘게 태어났는데. 물론 내가 낳은 건 아니고 아내가 낳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교복 모델감이다. 완전 딸바보 아버지의 시각이겠지만. 혹시 방송 관계자나 연예 관계자 분이 계시면 우리 딸 좀 봐주세요.
여러분, 이 아이 예쁘지 않나요? 완전 강요하고 있다.
이 아이는 춤도 잘 춘다. 방과 후에 방송댄스를 4년 정도 배웠다. 그 정도 배웠으면 못 추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수영선수로 용인시 대표도 했다. 그래서 어깨가 넓다. 지금 별의별 자랑을 다 하고 있다. 원소가 알면 나를 죽일 것이다.
그래도 얼굴이 받쳐주니까.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한다. 천수답에서 이상한 짓 하는 제사장이다.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한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함께 축하해 주시면 원소에게 자랑할 수 있을 텐데. 요즘 아빠가 너무 오버한다고 걱정하는 아이라서.
얼마 전 둘째 딸 빈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그랬다.
"엄마, 아빠가 졸업식에 와서 빈이랑 오버하면 어떡하지?"
무릎 꿇고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천성이란 게 어디 가나. 결국 또 오버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게 내 마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