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너무 늦게 부르는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
나는 아직도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떠난 지 오래지만,
당신의 이름은 여전히 내 입 안에 남아 있습니다.
말로 다하지 못한 말들 사이에,
침묵과 침묵 사이에,
지금도 나는 당신을 불러봅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내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시간도 닿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은 가버렸습니다.
*
어느 봄날, 큰 나무 하나가 쓰러졌습니다.
전날 내린 비가 땅을 물러지게 했고,
나무는 기울기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그냥 툭, 부러지듯 무너졌습니다.
지나는 길목에서 우연히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왜 하필 그 순간,
왜 하필 그 장면에서
당신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분명한 이미지였습니다.
말없이 모든 걸 감당하던 당신,
결국은 아무 말 없이 쓰러진 당신.
나에게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당신이었습니다.
*
나는 여태껏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무뚝뚝함이,
당신의 고집이,
당신의 조용한 뒷모습이
그저 나를 향한 무관심이라 믿었습니다.
왜 그토록 말이 없었는지,
왜 다정한 한마디를 아껴야 했는지,
나는 그게 야속했고, 억울했습니다.
어린 마음엔 상처가 되었고,
청년이 되어선 거리감이 되었고,
어른이 되면서는
그 침묵이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압니다.
당신의 말 없음은 침묵이 아니라 지탱이었음을.
말 대신 등에 지고 다닌 삶의 무게를
당신은 결코 우리에게 나누지 않았다는 것을.
*
당신의 마지막은 참 조용했습니다.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부른 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습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당신이 일어나 다시
“괜찮다”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끝내,
내가 마지막으로 듣고 싶던 말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먼 데로 떠났습니다.
그 후로 나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잣말처럼 당신을 부릅니다.
“아버지.”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그 이름을
나는 지금도 가만히 되뇌고 있습니다.
*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당신이 마당의 감나무 아래 앉아 계셨습니다.
어린 내가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당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꿈은 짧고 선명했고,
아침이 되자 나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도,
그리움은 죽지 않는다는 걸.
*
이제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이 하지 못한 말들을.
그리고 나 또한 용서를 구합니다.
그토록 뒤늦게 당신을 이해하게 된 나 자신을.
제때 말하지 못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끝끝내 삼킨 나의 서툼을.
*
오늘도 창밖에 나무가 흔들립니다.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나는 그 나무의 뿌리가 썩지 않기를,
그 줄기가 무너지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보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나는,
당신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긴 그림자 아래에서,
이렇게 또 한 줄의 노래를 씁니다.
사망부가(死亡父歌).
당신에게 바치는, 너무 늦은 사랑의 노래.
당신이 대답할 수 없는 이름을,
나는 여전히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