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와 한팀으로 일한지 꽤 많은 시간이 있었다.
주말의 시간은 더디흐른다.
바쁜 프린터와는 달리 놈과 나만 한가하다.
안온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를 내리고
타인과 동석한 기묘한 거리감 속에서
놈과 커피를 마신다
비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아직은 흉흉한 하늘뿐이다.
물론, 그 하늘은... 이 하늘은
그 하늘과는 전혀 다르다.
프린터는 여전히 종이를 토해내고 있다.
작은 소음.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무수한 불빛들...
불면의 밤은 그리도 깊어갔었다.
하늘을 정시하고, 나는 기다린다
비 그 비.
먼지를 먹고, 회색거리를 적시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금이라도 소행하려는 기억과 대치한다.
이젠 프린터가 끔찍한 소릴 토해낸다.
종이걸림.. 놈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
형광등 아래 늘어선 책상들
주말에도 숨쉬는 사무실
팩스기의 미세한 진동이
내 맥박과 겹쳐진다
창밖 회색 하늘 너머
누군가의 불빛이 깜빡인다
아직 오지 않은 비를
기다리며 앉아있다
종이 한 장 한 장이
시간의 증명이 되고
프린터의 마지막 신음 소리가
이 적막을 깨뜨린다
팩스와 나, 그리고
끝나지 않는 주말의 시간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2019.04.13.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