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외로운 고래 & 가장 외로운 늑대

2015.06.25 15:49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 한국에서 가장 외로운 늑대


prologue

원래 외로운 사람들은 본인이 선택한 외로움이더라 하더군요.

그리고 고백하건대, 오롯하게 가려면 그 정도쯤이야 감수해야 하는 숙명 같은 게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52 헤르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주파수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가 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2015년 3월 10일 즈음 네이버 상단에 올라왔던 이야기죠. 그래서 뜬금없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52 고래라고 불리는 이 고래는 다른 고래들과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이름부터가 52 헤르츠(Hz) 주파수로 노래한다는 특징에서 나온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가 된 이유도 바로 이 특별한 주파수 때문이죠...

희귀성의 슬픈 대가라고 할까요.


바닷속에서 유형하는 수많은 고래들 속에서 이름 없이 묻힐 수도 있었을 텐데...

12~25Hz로 의사소통을 하는 일반 고래와 달리, 52 고래는 51.75 헤르츠 주파수로 노래해 다른 고래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흠.


이런 소식이 알려짐에 따라 52 고래를 돕기 위한 사람들의 모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크라우드펀딩....

그를 찾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데.

찾아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지?? ^^


신기한 건, 아직까지 52 고래의 실제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52 헤르츠 주파수의 고래 소리는 여전히 감지되고 있어서 그 존재만큼은 확실하죠.

뭐~ 완전히 허상은 아닌 셈이네요.


어떤 전문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면서 "IT와 소셜미디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아닐 수도.

어차피 실제 본 사람은 없으니.



선량한 의도 뒤에 숨은 폭력성

그런데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요.

이런 인간들의 폭력성 말입니다.

포획해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죠?

수술이라도 해서 소통의 주파수를 맞춰주겠다는 건가요? 아니면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려는 건가요?

웬만하면 그냥 놔두면 안 될까.. ^^;;


가끔 이런 모습들이 질립니다.

나 자신의 폭력성에도 질리고 말이에요.. ㅡㅡ;;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서 나오는 은근한 폭력성 말입니다.


그러다 떠오른 게 바로 '한국에서 가장 외로운 늑대'라는 표현이었어요.

이번에 마크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존칭생략. 이하 '김'이라고 표기합니다. 죄송^^;;)이 '한국판 외로운 늑대'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김은 집안의 5대 종손입니다.

공부도 잘해 주변의 기대를 모았다더군요.

하지만 서울대 법대에 여러 번 떨어진 뒤 사수 끝에 다른 대학 법대에 들어가고, 한때는 고시생이었지만... — 나름 엄친아였던 셈이죠.


문득 '오수'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떠올랐어요.

5수 만에 서울대에 진학한 친구인데...

왜 난 그 친구가 생각나는 걸까요?ㅋㅋㅋ

혹시 질시? 질투?.. ㅡ


어쨌든 김기종은 언제부터인가 진보단체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안에서도 점차 고립되어 갔다고 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 모습으로 언론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문제는 반복된 돌출행위들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결국 기피 인물로 낙인찍히게 되었거든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요 ㅜㅜ

(그런데 이게 '정'이 아니라 '벼락'이 맞는 표현일까요?)

“튀는 놈 옆에 벼락 맞는다”인가?


흥미로운 건 그의 경력이에요.

대장, 소장, 회장, 대표... 전부 대표직들이더라고요.

자신이 리더가 아니면 못 견디는 성격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정작 밑에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외로운 늑대의 헤맴과 러셀의 가르침

이쯤에서 한 편의 만화가 떠올랐습니다.

사사키 마키의 <외로운 늑대>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늑대는 이제 없다고 모두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딱 한 마리가 살아남아 있었답니다. 외톨이인 늑대는 친구를 찾아서 매일같이 헤맸습니다."


사사키 마키 만화_ <외로운 늑대>의 본문 중에서..


그러다 자연스럽게 버트런드 러셀이 떠올랐어요.

『인생은 뜨겁게』라는 자서전처럼 정말 뜨거운 인생을 살았던 철학자 말입니다.

숱한 오해와 비판 속에서도... 귀족으로 태어나 부와 명예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사람이죠.


러셀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그것이다.


사랑과 지식은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나를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그를 무관심의 안락함에서 끄집어낸 것이다.



나의 글쓰기, 그리고 작은 골방에서의 성찰

뜬금없는 러셀 얘기는... 항상 서두를 장황하게 시작하는 본인의 글쓰기를 떠나 나의 화법.. 어휘구사 습관에 기인합니다.

서두가 길다 보니..

항상 결론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거나, 급 마무리를 할 뿐이다.

우물쭈물하며 대강 덮는.. 용두사미의 격..ㅋㅋㅋ


굳이 언급하고자 한다면.. 김의 울부짖음이 안타까웠던 까닭입니다.

집이자 사무실인 골방에서 그가 뭔가를 키워왔다는 점이 저와 비슷하거든요.

저도 작은 사무실에서 세 개의 나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시스템이 있어서 나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해서 물을 주지 않으면 그 나무들은 금세 말라죽어버려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 작은 골방을 벗어날 수가 없답니다.


저는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데,

그는 그 골방에서 대체 무엇을 키워온 걸까요? 분노? 극단적 민족주의? 아니면 다른 뭔가? 솔직히 잘 모르겠고, 관심 밖의 일이기도 해요.


제 관심은 오직 생존에 있으니까요.

어차피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잖아요.

만약 뭔가 제대로 된 게 있었다면 이런 상황까지 벌어졌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결국 핵심은 이거예요.

러셀이 가졌던 사람에 대한 연민을 김은 가지지 못했다는 것.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리거든요.

결국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거 아닌가요?


솔제니친이 말했듯이, 사람에 대한 애정에 기초하지 못한 이념은 "악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연적인 확고함과 결단력을 제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자기 합리화와 똑같은 거죠.


그럼 저는 어떨까요?

이 골방 같은 작업실에서...

(골방이라고 하니까 뭔가 음침해 보이는데, 사실 창은 넓거든요. 어째 쓰고 보니 나름 낭만적이지 않나요?? ^^) 과연 저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 같은 시선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원하는 것...

이 정도는 크게 죄가 아니겠죠?

그럼 저는 고래가 아닌 셈이네요. ㅋㅋㅋ


불통은 정말 싫거든요.



epilogue

고백하건대..

사실 글을 쓰다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첨 글을 시작할 때에는 소통에 관하여..

그리고 친구에 관해 쓰려고 했는데..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더군요..ㅡㅡ


뭐 힘들게 쓴 거.. 별일 있겠나 싶어서. ^^;;

(그런데 조심스러운 건 편향적 시각으로 보아 까일까 봐서.. TT)..

어쨌든 등록. 확인은 눌렀어.


다들 맛점들 하셨겠지..

저도 늦은 점심 끝.


자 오늘도 힘내어 보자고요. 파이팅!!!



천수답에서 간만에 인사드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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