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4"/5

최종화: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by leehyojoon ARCH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최종화: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에필로그 ―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정말 나를 사랑했을까. 혹은, 나 역시 그를. 하지만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사랑은 언어로 정의되지 않고, 우리는 애초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와 내가 나눈 모든 순간들은 말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침묵 속에서 섹스를 했고, 침묵 속에서 커피를 마셨고, 침묵 속에서 서로를 지나쳤다. 그 침묵이 가벼운 허락이었는지, 깊은 포기였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해", "보고 싶어",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일 수도 있다. 말은 사랑을 한정 짓는다. 정의하고, 범위를 정하고, 기대를 만든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기대도, 약속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그래서 실망도 없었고, 배신도 없었고, 이별의 아픔도 없었다. 다만 부재만 있을 뿐이었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나는 가끔 그가 다시 올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리곤 했다. 현관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비 오는 날 우산을 털어내는 소리. 그런 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한 번씩 뛰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안도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말하지 않을까, 아니면 이제는 이름을 물어봐야 할까.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나를 전부 이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은 우리만의 약속 같았다. 지켜지지도, 파기되지도 않은, 이상한 계약.


기억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한 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았고, 미래를 말한 적도 없지만, 그 사람은 아직 내 안 어딘가에 있다.


지금도 그가 자주 입던 흰 셔츠 색깔을 기억한다. 가끔 그런 셔츠를 입은 남자를 길에서 보면 나는 무심히 고개를 돌린다. 혹시라도 진짜 그일까 봐, 혹시라도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아니, 어쩌면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여름이 다시 왔다. 작년과 같은 더위, 작년과 같은 습도. 하지만 모든 것은 달랐다. 남편은 서울로 전근을 왔고, 우리는 다시 함께 살고 있다. 평범한 부부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나는 그 책을 펼쳐본다.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읽는다.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에서 시작된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했다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오해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을까.


봄이 끝나고 여름이 왔고, 도시는 다시 다른 온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했고,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커피를 마시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는지도, 그저 잠시 멈추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가장 정중한 방식이었다.


이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과거도, 미래도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현재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현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사랑이 그랬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다만 몇 개의 현재만 있을 뿐인. 그리고 그 현재들은 이제 모두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거들은 여전히 현재 시제로 내 안에 살아있다. 마치 지금도 그가 내 옆에 누워 있는 것처럼, 마치 지금도 우리가 말없이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는 것처럼.


어제, 연희동 그 카페 앞을 지났다. 창가에는 누군가가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봤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고, 그도 아니었다. 하지만 똑같은 풍경이었다. 똑같은 오후, 똑같은 햇빛, 똑같은 얼음 조각들.


세상은 그렇게 반복된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다른 이름들이 불리거나 불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현재 시제로 살아남는다.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계속 걸었다. 집으로,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하지만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지도 모른다고.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라고. 그리고 나는 아마 "가끔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때도 나는 이름을 묻지 않을 것 같다.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그것이 우리 사랑의 전부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랑.




***

완결


이것으로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이 완결됩니다. 이름을 묻지 않은 사랑, 말하지 않은 감정, 부르지 않은 이름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그런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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