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말하지 않는 사랑의 구조
# 37번
## 2편: 말하지 않는 사랑의 구조
"I never even told you, I never even tried..."
그녀가 사라진 지 두 달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버스를 탔다. 6시 47분.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그녀의 자리는 항상 비워두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려 하면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여 그 자리가 이미 차지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공간에는 기억이 축적된다. 이것은 건물을 설계할 때 늘 염두에 두는 사실이다. 벽이 기억하고, 바닥이 기억하고, 천장이 기억한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직도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시트에 남은 체온의 기억, 창문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글씨들, 그리고 그녀가 뿜어내던 은은한 향기.
버스라는 공간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단순한 이동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일종의 성당 같은 곳이 되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장소, 그녀와의 시간을 반복 경험하는 순례지 같은.
가끔 비슷한 여자가 그 자리에 앉는 일이 있었다. 머리 스타일이 비슷하거나, 책을 읽는 자세가 닮은 여자들. 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아니었다. 목덜미의 각도가 달랐고, 손가락의 움직임이 달랐고, 무엇보다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녀는 자신이 차지한 공간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사람이었다. 마치 그 자리가 원래 그녀를 위해 설계된 것처럼. 하지만 다른 여자들은 그 공간에 억지로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비례가 맞지 않았다. 리듬이 깨졌다.
어느 날은 중년 여성이 그 자리에 앉았다. 큰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통화를 하는 여성이었다. 나는 묘한 분노를 느꼈다. 그 자리는 그런 용도가 아니었다. 그 자리는 조용히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보고, 가끔 창에 글씨를 쓰는 자리였다.
"And I still think about you all the time..."
어떤 오후에는 그녀가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버스가 정거장에 서고 문이 열릴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찾았다.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올라타면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곧 실망해야 했다.
그녀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일상의 구조 자체를 바꿔놓고 사라진 것이었다. 마치 건물의 기둥 하나를 빼낸 것처럼, 전체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버스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녀 없는 시간들이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보다 더 강렬하게 그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부재가 존재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3월, 회사에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다.
처음 본 것은 월요일 아침 회의 때였다. 키는 165센티미터 정도, 어깨너비는 좁은 편이지만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는 체형이었다. 검은색 정장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안에 입은 크림색 블라우스가 그녀의 풍만한 가슴 라인을 따라 살짝 당겨져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 곡선이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안녕하세요, 새로 부임한 팀장입니다."
목소리는 중저음이었고, 말끝을 약간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웃을 때 윗니가 살짝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얗고 고른 치아였고, 입술은 자연스러운 장밋빛이었다.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붉은 것이 신기했다.
그녀의 얼굴은 전형적인 한국 미인의 얼굴이었다. 계란형에 가까운 얼굴형, 또렷한 쌍꺼풀, 적당히 높은 코.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눈매였다. 약간 올라간 눈꼬리 때문에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과장님이시죠?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손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악력이 있었다. 손목은 가늘었는데, 거기에 얇은 금팔찌가 걸려 있었다. 악수하는 동안 그녀의 향수 냄새가 미묘하게 전해졌다. 플로럴 계열이었지만 그녀의 향수와는 다른 종류였다. 더 진하고, 더 관능적이었다. 샤넬 No.5 같은 클래시컬한 향이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웃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꼬리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아마 서른 살 전후로 보였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지만, 눈썹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마스카라를 살짝 발라 속눈썹이 길어 보였다.
그녀와 그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그녀가 정적이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면, 새 팀장은 동적이고 현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녀가 클래식 음악이라면, 새 팀장은 재즈 같은 느낌이었다.
새 팀장의 패션 스타일도 달랐다. 그녀는 항상 차분한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새 팀장은 좀 더 다양한 색깔을 시도했다. 빨간색 블라우스, 베이지색 재킷, 네이비 원피스. 그리고 액세서리를 잘 활용했다.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을 적절히 매치했다.
새 팀장은 적극적이었다.
"과장님, 점심 같이 드실래요?"
"퇴근 후에 차라도 한잔 어떠세요?"
"주말에 뭐 하세요?"
처음에는 거절했다.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새 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그녀의 이런 적극성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선했다.
새 팀장은 말을 많이 했다. 자신의 취미, 좋아하는 음식, 주말 계획, 최근에 본 영화. 그녀가 침묵으로 소통했다면, 새 팀장은 언어로 소통했다.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나는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회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조명이 은은하고 테이블 간격이 넓은 곳이었다. 새 팀장은 빨간 와인을 주문했고, 나는 맥주를 시켰다. 그녀는 와인을 마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잔을 돌려서 향을 맡고, 작은 모금으로 맛을 음미했다.
"과장님은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별로 안 들어요."
"영화는요?"
"가끔 봅니다."
"취미는요?"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그녀가 질문하고, 나는 짧게 대답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무뚝뚝한 반응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새 팀장이 말할 때의 모습을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손짓을 많이 사용했고, 표정이 풍부했다. 웃을 때는 몸 전체로 웃었고, 진지할 때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가 한 가지 표정만 유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와인을 두 잔 마신 후, 그녀의 뺨이 약간 붉어졌다. 그리고 조금 더 대담해졌다.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이는 횟수가 늘었고, 내 눈을 더 오래 바라봤다.
"과장님,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없습니다."
"정말요? 믿기지 않는데."
그녀는 테이블 위로 몸을 더 기울였다. 그 순간 그녀의 블라우스 V넥 사이로 검은 레이스 브래지어의 윗부분이 살짝 보였다. 가슴골의 부드러운 곡선도 함께 드러났다. 새 팀장은 자신의 몸에 자신이 있는 사람 같았다.
"과장님 같은 분이 혼자실 리가 없어요."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와인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허스키해진 목소리였다.
"저는... 과장님이 좋아요."
솔직한 고백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팀장님..."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제 마음을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손등을 살짝 만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손톱에는 누드 톤의 네일이 발라져 있었고,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그날 밤, 나는 그녀를 택시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현관 앞에서 그녀는 나를 올려다봤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볼이 아직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들어오실래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거절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
"But I can't love you the way you want me to..."
나는 망설였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새 팀장은 지금 여기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 팀장의 아파트는 깔끔했다. 모던한 가구들과 센스 있는 소품들. 거실 한쪽 벽에는 추상화가 걸려 있었고, 책장에는 경영서적들과 소설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커피 드릴까요?"
그녀가 물었지만, 우리 둘 다 커피를 마실 기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그녀의 아파트는 8층이었고, 야경이 잘 보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다른 창가의 풍경이 떠올랐다. 버스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
"과장님."
새 팀장이 내 뒤로 다가왔다.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따뜻하고 확신에 찬 손길이었다.
나는 돌아섰다. 그녀가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약간 젖어 있었고, 입술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와인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여서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시죠?"
대답 대신 나는 그녀를 안았다. 그녀의 몸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가슴이 내 가슴에 닿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샴푸 냄새가 났다.
우리는 키스했다. 그녀의 입술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와인 맛이 살짝 났고, 혀는 적극적이었다. 그녀가 침묵 속에서 조심스럽게 키스했을 것과는 완전히 다른 키스였다.
하지만 키스를 하면서도, 나는 계속 다른 생각을 했다. 그녀라면 어떻게 키스했을까. 조용하고 천천히,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I'm trying to forget you, but I can't..."
2편 끝*
다음 편에서는 새 팀장과의 육체적 관계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