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반복되는 패턴
# 37번
## 4편: 반복되는 패턴
"I keep making the same mistakes..."
새 팀장이 떠난 지 석 달 후, 회사에 인턴이 들어왔다.
스물셋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비율이 좋았다. 특히 다리가 길어서 치마를 입으면 더욱 돋보였다. 첫날 그녀는 무릎 위 10센티미터 정도 올라오는 네이비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왔는데, 걸을 때마다 허벅지의 탄탄한 근육선이 은근히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인턴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목소리는 높고 명랑했다. 새 팀장과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보였다.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쪽 뺨에만 생기는 작은 보조개였는데, 그것이 그녀를 더욱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전형적인 대학생 얼굴이었다. 동그란 눈, 작은 코, 도톰한 입술.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특히 눈이 인상적이었다. 맑고 투명해서 마치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가끔 그 눈에서 나이에 비해 성숙한 빛이 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웃고 있을 때도 눈 깊숙한 곳에는 무언가 그림자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첫 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새 팀장과의 관계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그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턴은 적극적이었다. 새 팀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배님, 점심 같이 드실래요?"
"커피 한잔 어때요?"
"혹시 주말에 시간 있으세요?"
새 팀장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인턴의 어프로치는 더 가벼웠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거절해도 상처받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즐기는 것 같았다.
인턴의 패션 스타일은 젊었다.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잘 활용했고, 액세서리는 심플했다. 가끔 목에 작은 펜던트를 걸거나, 귀에 작은 귀걸이를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단순함이 오히려 그녀의 젊음을 더 부각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나는 인턴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이답게 순수한 면이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웃었고, 호기심이 많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했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눈빛을 보냈다.
"선배님 정말 멋있어요."
"어떤 점이요?"
"모든 면에서요. 일도 잘하시고, 차분하시고... 어른 같아요."
그녀의 찬사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새 팀장은 나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봤다면, 인턴은 나를 올려다봤다. 그 차이가 묘한 우월감을 주었다.
인턴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녀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술을 마셨다. 그녀는 소주를 잘 마시지 못했다. 두 잔 정도 마시자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술에 취한 그녀는 평소보다 더 솔직했다.
"선배님, 저... 고백할 게 있어요."
"뭐죠?"
"사실 처음부터 선배님이 좋았어요."
"처음부터요?"
"네. 첫날 봤을 때부터."
그녀는 술에 취해서 평소보다 대담했다. 내 팔을 살짝 붙잡기도 하고, 내 눈을 더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선배님은... 저 어때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술에 취한 그녀는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다.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입술이 약간 부풀어 있었다. 볼의 홍조가 그녀를 더욱 어리고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예쁘죠."
"그것 말고... 여자로서 어때요?"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새 팀장보다 더 작았고, 더 부드러웠다. 손톱에는 연한 핑크색 네일이 발라져 있었고,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젊은 여성다운 손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원룸이었는데, 새 팀장의 아파트보다 훨씬 작고 소박했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녀만의 개성이 담겨 있었다.
"들어와서 물이라도 마시고 가세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 취기가 남아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한 달 후, 우리는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제주도였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는 것.
펜션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방은 하나였고, 더블베드가 놓여 있었다. 인턴은 처음에는 부끄러워했지만, 곧 자연스러워졌다.
"바다 정말 예뻐요."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다른 창가를 떠올렸다. 버스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 하지만 이번에는 그 생각을 빨리 떨쳐냈다. 지금은 인턴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인턴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봤다. 제주도의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져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그녀를 더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선배님, 뭘 보세요?"
"당신을요."
"거짓말."
그녀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겼다. 그녀의 몸은 작고 따뜻했다.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향기가 났다. 샴푸 냄새와 그녀만의 체취가 섞인 향기였다.
그날 밤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잤다.
인턴은 섹스에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해했고,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불 꺼도 될까요?"
"왜요? 당신을 보고 싶은데."
"부끄러워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불을 켜둔 채로 내게 몸을 맡겼다.
그녀의 몸은 젊었다. 가슴은 새 팀장보다 작았지만 탄탄했고, 피부는 매끄러웠다. 특히 허리 곡선이 아름다웠다.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그 효과가 확실히 보였다. 배는 평평했고, 다리는 길고 가늘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반응이었다. 만질 때마다 놀란 듯이 몸을 떨었고, 작은 신음을 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인 것처럼 순수하게 반응했다.
"아파요?"
내가 물으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좋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그날 밤 그녀와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완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또다시 내 머릿속에는 그녀가 있었다. 창가의 그녀, 책을 읽던 그녀, 창에 글씨를 쓰던 그녀.
그녀라면 어떨까. 아마 더 조용하고, 더 신중할 것이다. 그리고 만진 후에는 긴 여운이 있을 것이다. 마치 성당에서 기도를 마친 후처럼.
"But you're still there in my mind..."
다음 날 아침, 인턴이 내 옆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시트를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나를 바라봤다.
"후회하지 않아요?"
"뭘요?"
"어젯밤."
"아니요. 당신은요?"
"저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미묘한 의문이 어려 있었다.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는데, 그것을 얻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인턴과의 관계는 새 팀장과의 관계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새 팀장은 처음부터 복잡한 관계였다면, 인턴과는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순함 뒤에 숨겨진 복잡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선배님, 첫사랑이 누구였어요?"
"갑자기 왜요?"
"궁금해서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는...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선배가 있어요."
"지금도요?"
"가끔 생각나요. 특별한 날에는 더."
그녀의 목소리에 묘한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그 선배랑은 어떻게 됐어요?"
"아무것도 안 됐어요. 고백도 못 했거든요."
그녀가 쓸쓸하게 웃었다.
"근데 이상해요. 아무것도 없었는데 계속 생각나요."
나는 그녀의 말이 이해됐다. 때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더 오래 남는다. 상실보다 미완성이 더 아프다.
"선배님도... 그런 사람 있죠?"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눈에 보여요. 가끔 저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새 팀장처럼.
그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묘하게 변했다. 섹스를 할 때도 그녀는 가끔 다른 곳을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 고등학교 선배를.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 주는 관계였다. 사랑이 아니라 위로였다. 새 팀장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어느 날 밤, 그녀가 말했다.
"우리 이상하죠?"
"뭐가요?"
"서로 다른 사람 생각하면서 안고 있으니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각자의 그림자와 함께 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아요."
"저도요."
인턴은 새 팀장보다 더 솔직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선배님과 있으면... 안전해요."
"안전해요?"
"네. 상처받을 것 같지 않아요. 서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녀의 말에는 슬픔과 안도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석 달 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배님, 그 선배한테 연락이 왔어요."
"고등학교 때 선배요?"
"네. 결혼한다고... 초대장을 보내왔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일주일 후, 그녀가 말했다.
"다녀왔어요. 결혼식."
"어땠어요?"
"이상했어요. 그렇게 그리워했는데... 보니까 별로더라고요."
그녀가 웃었다. 처음으로 맑은 웃음이었다.
"신부가 정말 예뻤어요. 그 선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기분이에요?"
"후련해요. 이제 정말 끝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한 달 후, 그녀도 떠났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했다.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정말로."
"선배님도... 그 사람을 찾아보세요."
"누구요?"
"선배님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
"But you're still there in my mind..."
그녀가 사라진 지 정확히 1년이 지난날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녀가 다니던 서점 앞을 지났다. '그리고 책방'. 오랫동안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들어가 볼까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
서점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카페 공간이 넓어져 있었고, 책들의 배치도 달랐다. 하지만 여전히 조용하고 아늑했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앉았을 그 자리.
"손님, 처음 오시는 건 아니시죠?"
서점 사장이 말을 걸었다.
"예. 오래전에 온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익숙한 얼굴이라서."
사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혹시... 편지 받으실 분이세요?"
"편지요?"
"네. 1년 전에 어떤 분이 맡기고 가신 게 있어요. 언젠가 누군가 찾으러 올 거라고 하시면서."
"어떤... 어떤 분이었는데요?"
"여자분이었어요.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는데."
그녀였다. 틀림없이 그녀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편지... 볼 수 있을까요?"
사장은 뒤로 가서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겉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냥 흰 봉투였다.
"실례합니다."
누군가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1년 만에 보는 그녀. 머리를 더 짧게 자른 그녀. 좀 더 말라 보이는 그녀. 하지만 여전히 그녀였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1년 만이네요."
그녀가 먼저 말했다.
"네..."
"잘 지내셨어요?"
복잡한 질문이었다. 새 팀장과 인턴을 떠올렸다. 그들과의 관계, 그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
"그럭저럭요. 당신은요?"
"저도 그럭저럭요."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And then I saw you again, sitting by the window..."
4편 끝*
최종 편에서는 그녀와의 대화와 깨달음, 그리고 열린 결말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