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홀로 남은 버스
# 37번
## 5편: 홀로 남은 버스
"And then I saw you again, sitting by the window..."
"어디 계셨어요?"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1년 동안 궁금했던 것, 매일 밤 잠들기 전 생각했던 것.
"멀리요.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과 같았지만, 뭔가 달라져 있었다. 더 차분해졌다고 할까.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지금은... 괜찮으세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조금 나아졌어요. 그때보다는."
비가 더 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우산을 펼치며 뛰어가고 있었다. 6월의 비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계절의 비.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나는 조용히 관찰했다. 1년 전과 똑같은 자세였다.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 하지만 예전보다 더 평온해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고마웠어요."
"뭐가요?"
"기다려줘서."
나는 놀랐다.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봤어요. 멀리서. 당신이 여전히 그 버스를 타는 걸."
"어떻게..."
"처음에는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보이더라고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가 계속했다.
"미안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고마웠어요. 누군가 저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게."
우리 사이에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들이 나누는 편안한 침묵 같았다.
"저도..."
"뭐요?"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서... 좋았어요."
이상한 대화였다. 우리는 서로를 거의 모르는 사이였는데,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왜 그 자리에 앉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편안해서요. 창가라서 밖을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자리라서."
"저를 알아차린 건 언제였어요?"
"두 번째부터요.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같은 자리에 계시더라고요."
그녀가 작게 웃었다.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조금. 그런데 나중에는... 안심이 됐어요."
"안심이요?"
"누군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말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녀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편지를 썼어요."
그녀가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떠나기 전에. 언젠가 당신이 여기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나는 아직 열어보지 못한 편지를 바라봤다. 그녀가 온 이상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읽어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지금요?"
"네. 그때의 제 마음이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꺼내 펼쳤다.
*"버스 뒤편에 앉아 있던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이상한 편지죠?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니.*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제 예상이 맞았다는 뜻이겠네요. 당신은 언젠가 이곳에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지금 이 도시를 떠나려고 해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요. 그런데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당신을 알아차린 건 두 번째 만났을 때였어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당신을.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계속 반복되면서 깨달았죠. 당신이 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도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안심이 되었어요. 누군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저는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당신이 있었어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저를 바라보는 당신이.*
*당신 덕분에 버스 타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되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지막에 잠깐 대화를 나눴을 때,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따뜻했어요. 당신의 커피처럼.*
*어떤 사랑은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런 것을 나눴다고 생각해요.*
*이제 저는 떠나요. 하지만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지길 바라요.*
*더 이상 저를 기다리지 마세요. 저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어요. 당신 덕분에.*
*감사했어요. 정말로.*
*창가의 그녀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나는 한참을 말하지 못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말문이 막혔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겨우 말했다.
"뭘요?"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사랑."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랑이 때로는 더 순수해요. 현실의 때가 묻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프기도 하죠."
"맞아요. 하지만 그 아픔도 아름다워요."
우리는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비 소리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카페 안에는 커피 내리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1년 동안... 뭘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부산에 있었어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게스트하우스요?"
"네.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어요. 매일 아침 바다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힘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그런데 점점 괜찮아졌어요."
"뭐가 도움이 됐어요?"
"바다요. 그리고... 시간."
그녀가 창밖을 바라봤다.
"바다는 항상 거기 있어요. 날씨가 바뀌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그런 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돌아오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네. 이제 괜찮을 것 같아서."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당신은... 그 1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는 망설였다. 새 팀장과 인턴의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들과의 관계, 그 안에서 느꼈던 공허함, 그리고 계속된 그녀에 대한 그리움.
"복잡했어요."
"복잡했다니요?"
"다른 사람들을 만났어요. 하지만..."
"하지만?"
"당신을 잊을 수 없었어요."
그녀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슬픔과 미안함이 섞인 것 같았다.
"미안해요."
"왜요?"
"제가... 당신의 시간을 묶어둔 것 같아서."
"묶어두지 않았어요. 제가 놓지 않았던 거예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당신을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어요.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그리워하는 거였다는 걸."
"그리움이요?"
"네.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랬어요. 부산에서도 당신이 생각났어요. 바다를 보면서."
"이제... 정말 끝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가요?"
"기다리는 거. 저를 위해서."
그녀는 일어서려 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1년 전보다 더 가늘어진 것 같았다.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중요하지 않아요."
"저에게는 중요해요."
"당신에게 저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었잖아요. 그게 더 아름다웠어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름을 알게 되면, 이 모든 것이 평범해질지도 몰랐다.
"그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아마... 안 될 것 같아요."
"왜요?"
"어떤 만남은... 한 번으로 충분해요."
그녀는 일어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1년 전과 똑같은 뒷모습이었다.
문 앞에서 그녀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읽어보셨어요?"
"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사라졌다. 빗속으로.
"Some loves are meant to remain unspoken..."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편지를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녀의 글씨체는 단정했고, 문장은 조용했다. 그녀 다운 글씨였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37번 버스를 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탈 수 없었다. 그 버스는 이제 우리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그녀 없이 타기에는 너무 무거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다른 노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42번, 151번, 때로는 지하철. 매일 다른 길로 출퇴근했다.
새로운 길들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 다른 이야기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그녀와의 기억을 정리해 갔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37번 버스를 보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가 자리를 바라봤다. 그녀가 앉아 있던 그 자리를.
3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새 팀장과 인턴, 두 번의 실패로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와의 사랑이 내 안에 너무 깊이 새겨져 있었다.
회사 동료들은 가끔 소개팅을 권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들은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우연히 그 서점 앞을 지났다. '그리고 책방'. 3년 만에 보는 곳이었다.
들어가 볼까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쳤다.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37번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버스는 그대로였다. 같은 좌석, 같은 풍경, 같은 정거장들. 나는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폰은 양쪽 다 끼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는 이제 그냥 하나의 좌석일 뿐이었다. 그녀만의 특별함은 그녀와 함께 사라졌다.
"We were riding the bus just the two of us, you were looking out the window..."
어떤 사랑은 시작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다.
나는 그것을 배웠다. 그녀에게서.
지금도 가끔 그녀를 생각한다.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그녀를.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를.
그럴 때마다 나는 기뻐한다.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혼자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내 마음 한편에는 항상 그녀가 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던 그녀, 창에 글씨를 쓰던 그녀, 커피의 온도를 기억한다고 했던 그녀.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사람을 평생 그리워한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때로는 말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랑이 때로는 더 오래간다는 것을.
최근에 나는 작은 집을 설계하고 있다. 나를 위한 집이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 그녀가 1년 동안 머물렀던 부산의 바다를 닮은 곳에.
그 집에는 큰 창이 있을 것이다. 창가에는 작은 책상이 있고, 그곳에서 나는 책을 읽을 것이다. 가끔은 창에 김이 서리면 무언가를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하던 것처럼.
"And I still ride the bus, just not the same one..."
버스는 여전히 도시를 달리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태우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면서.
그리고 나는 다른 길을 간다. 그녀의 기억과 함께.
때로는 새로운 버스에서 비슷한 광경을 본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여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남자.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녀의 이야기면 충분하다. 말해지지 않았기에 더욱 완벽한 그 이야기.
오늘도 나는 새로운 길로 출근한다. 하지만 가끔 멀리서 37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짓는다.
그 버스 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있다. 창가에 앉은 그녀와, 뒤쪽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나.
영원히 그곳에서, 말하지 않는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끝 -*
***
이 소설은 말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가장 깊은 사랑이 가장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고,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주인공과 그녀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완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어떤 사랑은 소유하려 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는 놓아주는 것입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그랬듯이, 어떤 사랑은 한순간의 만남으로도 평생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에게 적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항상 말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조용한 시선 하나, 따뜻한 커피 한 잔, 창에 쓴 한 글자로도 충분합니다.
Cracker의 "Bus"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영감을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