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심장 아래, 피보다 따뜻한 것 #4/6"

4편: "이름 없는 양의 무덤 앞에서"

by leehyojoon ARCH

# 4편: "이름 없는 양의 무덤 앞에서"

## 산문시:


「이름 없는 양의 무덤 앞에서」


_잊는다는 것은 묻는 일이 아니라, 자주 찾아가는 일이다.


그 자리는 표시가 없다. 이름도 없고, 비석도 없다. 다만 풀들이 다른 방향으로 자라 있고, 비가 오면 흙이 조금 더 쉽게 젖는, 그런 자리.


나는 그곳을 무덤이라 부른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곳을 '기억의 자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죽음을 묻는다. 나는 감정을 묻는다. 다시는 입에 담지 않을 말, 끝내 전하지 못한 체온, 사라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들을.


양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불렀다. "그때 그 사람"이라고, "내가 놓친 것"이라고, 혹은 "내가 너무 사랑했던 것"이라고.


무덤 앞에서 나는 묻는다. "정말 끝났을까." "정말 다 지나간 걸까."


그 대답은 오지 않는다. 양은 말이 없다. 죽은 것들은 말 대신 침묵과 향기와 여운으로만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정기적으로 그 자리를 찾는다. 무덤은 점점 잊혀야 하건만, 나는 오히려 그곳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 마치 내가 잊지 않기 위해 잊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이름 없는 무덤 앞에서 나는 내 감정을 조용히 접는다. 때로는 한 줄의 시처럼, 때로는 접히다 찢어진 편지처럼.


그리고 안다. 잊는다는 건, 그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약속이라는 걸. 무덤이 무덤으로 남기 위해선 누군가, 거기에 다녀간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걸.


오늘도 나는 다녀왔다. 그 이름 없는 자리. 양의 무덤. 나의 마음.





***


## 소설:


#4. "이름 없는 양의 무덤 앞에서"


기억의 자리를 찾아서


양을 잃은 지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치유의 과정을, 기억의 무게를,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존재하는 것의 힘을. 하지만 무엇보다, 잃은 것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었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홍대 근처를 걷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저 걸었다. 양이 있을 때는 항상 목적지가 있었다. 을지로 4가 역이라는 확실한 목적지가.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목적지가 없었다. 대신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있었다.


작은 공원이었다. 이름도 없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공원. 몇 그루의 나무와 벤치 하나, 그리고 아이들이 뛸 수 있는 작은 공간.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처음 보는 곳인데 낯설지 않은.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새로운 잎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언가 끝나가는 계절 같았다.


그중 하나의 나무 아래에서 나는 멈춰 섰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오래 머물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작은 돌을 꺼냈다. 길을 걸어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주운 것이었다. 평범한 돌이었다. 하천에서 물에 씻겨 둥글어진, 손바닥 크기의 회색 돌. 하지만 손에 쥐고 있으니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 돌을 나무 아래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 순간, 그 자리는 달라졌다. 특별한 곳이 되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변했다.




무덤의 탄생


그날 저녁, 재즈바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무덤을 만들었어요."


그녀는 위스키 잔을 멈춘 채 나를 바라봤다.


"무덤이요?"


"양을 위한 무덤이에요. 상징적인 무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배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것을 찾았다는 듯한.


"저도 그런 자리가 필요했어요."


"함께 만들어보실래요?"


"네."


다음 일요일, 우리는 함께 그 공원을 찾았다. 내가 돌을 놓은 자리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 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가방에서 작은 꽃을 꺼냈다. 하얀 들꽃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이 하얗다는 것이었다. 양의 색깔처럼.


그녀는 그 꽃을 내가 놓은 돌 옆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이제 정말 무덤이 된 것 같아요."


그 말이 맞았다. 돌 하나와 꽃 하나. 그것만으로 그 자리는 무덤이 되었다. 이름도 없고, 비석도 없고, 화려한 장식도 없는 무덤. 하지만 분명한 무덤.


나는 생각했다. 현대의 추모 공간들은 예전과 다르다고. 웅장한 기념비 대신 비워진 자리를 만든다고. 그 빈 공간이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담는다고.


그 자리는 표시가 없었다. 이름도 없고, 비석도 없었다. 다만 우리가 그곳을 '기억의 자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만 있었다.


"누군가는 죽음을 묻지만, 우리는 감정을 묻는 거예요."


그녀가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양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오전, 그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특별한 의식은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가서 잠시 서 있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침묵의 대화


무덤 앞에서 나는 자주 혼잣말을 했다.


"정말 끝났을까. 정말 다 지나간 걸까."


대답은 오지 않았다. 양은 말이 없었다. 죽은 것들은 말 대신 침묵과 향기와 여운으로만 대답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정확했다.


세 번째 일요일, 그녀가 물었다.


"잊는다는 건 뭘까요?"


나는 한참 생각했다. 잊는다는 것. 예전에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지금은... 자주 찾아가는 것 같아요."


"무슨 뜻이에요?"


"무덤이 무덤으로 남기 위해선 누군가가 거기에 다녀간 흔적이 있어야 하잖아요. 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약속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양을 잊지 않는 거네요."


"평생요."


그 자리에 있으면 이상하게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조용한 공원이었지만, 마치 무언가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듯한 소리가. 부재를 통해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그런 공간의 힘인 것 같았다.




새로운 방문자


네 번째 일요일,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우리가 만든 무덤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달랐다. 무덤을 보는 그의 눈에는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가 말했다.


"혹시 누군가의 무덤인가요?"


"특별한 무덤이에요. 잃은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예요."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빛에서 같은 종류의 상실을 본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도 그런 자리가 필요했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혼자 견뎌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함께 있어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그는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우리도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이 작은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모습. 누가 봐도 이상할 것 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연스러웠다.


한참 후에 그가 말했다.


"아내를 잃은 지 일 년이 되었어요."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그의 피로, 그의 이해, 그의 깊은 눈빛.


"힘드셨겠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어요. 30년을 함께 살았거든요."


"지금은 어떠세요?"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혼자 사는 법을."


그렇게 우리는 무덤 친구가 되었다.




상실자들의 연대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도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 그리고 그 상실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 만남에서 그가 자신에 대해 더 이야기했다.


"저는 소아과 의사였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 죽음 앞에서 무력했다는 아이러니.


"30년 동안 아이들을 돌봤는데, 정작 제 가족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아내분이 편찮으셨나요?"


그녀가 물었다.


"2년 동안 투병했어요. 제가 의사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음조차 다 흘린 후의 담담함이었다.


"그분을 위한 자리도 여기에 만드시겠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이곳은 모든 상실을 받아들이는 자리예요."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반지를 꺼냈다. 결혼반지였다. 금이 아니라 은으로 만든, 소박한 반지였다.


"아내가 마지막에 제게 맡긴 거예요. 저보다 먼저 가면서 이걸 좋은 곳에 놔두라고."


그는 그 반지를 우리가 만든 작은 무덤 옆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 순간, 그 자리는 더 이상 우리만의 무덤이 아니게 되었다. 모든 상실을 품는 자리가 되었다.




확장되는 기억


한 달이 지나고, 그 무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자리가 되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런 자리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모두가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그 상실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꽃을 가져왔고, 어떤 사람은 편지를 가져왔다. 어떤 사람은 그냥 조용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젊은 여자가 와서 고양이 목걸이를 놓기도 했고,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와서 작은 장난감을 놓기도 했다.


"이상해요."


어느 일요일, 그녀가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 양만을 위한 자리였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의 상실을 위한 자리가 되었어요."


"그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상실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잃고 살잖아요."


정말 그랬다. 우리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양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는 그것을 잃는다. 그리고 그 잃음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돌봄의 의미


"그리움은 짐이 아니에요."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아내를 잃고 일 년을 버텨온 사람의 말이었다.


"그럼 뭐죠?"


"사랑의 다른 형태예요."


그의 말에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는 깊이가 있었다.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죽음을 봤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아프지 않는다는 걸. 아픈 건 남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사람들을 돌보는 거예요. 그들의 그리움을 함께 나누는 거예요."


"우리도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거네요."


그녀가 말했다.


"이 무덤을 돌보는 일도 그런 거예요."


정말 그랬다. 우리는 죽은 양을 위해 무덤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상실을 기억하고, 그리움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치유의 순환


반년이 지났다. 그 무덤은 이제 작은 성지가 되었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를 얻는 자리. 그리움을 나누는 자리.


"우리가 양을 잃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얻었어요."


그녀가 어느 일요일에 말했다.


"뭐를 얻었죠?"


"다른 사람들의 그리움을 이해하는 능력을요."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양을 잃었지만, 그 상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상실이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결시킨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우리만 아픈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아픔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가 덧붙였다.


"마치 지하수처럼. 땅 밑 깊은 곳에서 모든 물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무덤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실감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상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실들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같았다.




새로운 역할


"우리가 이제 뭐가 된 걸까요?"


어느 일요일, 무덤을 돌보며 그녀가 물었다.


"글쎄요. 무덤지기?"


"아니면 기억지기?"


"둘 다인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저는 평생 아이들을 돌봤는데, 이제는 어른들의 상처를 돌보고 있어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양을 돌보다가 이제는 사람들의 그리움을 돌보고 있어요."


"어쩌면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양을 잃은 진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상실에서 공동의 치유로 나아가게 하려고.


무덤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어 맡았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였던 경험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녀는 무덤 주변을 정리했다. 사람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정성스럽게 배치하고, 시든 꽃들을 치웠다.


나는... 나는 그냥 지켜봤다. 이 모든 것이 계속될 수 있도록. 무덤이 무덤으로 남을 수 있도록.




기억의 의식


일 년이 지났다. 우리는 양을 잃은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슬픈 기념이 아니라, 감사한 기념으로.


"양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이거였을까요?"


그녀가 무덤 앞에서 말했다.


"이 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해 준 것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준 것."


"맞아요. 양은 정말로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그가 말했다.


"다른 형태로 계속 존재하고 있었어요. 이 자리에, 우리 마음에, 그리고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위로가 되어서."


그날 우리는 작은 의식을 치렀다. 특별한 준비물은 없었다. 다만 각자 무언가를 가져왔다.


나는 새로운 돌을 가져왔다. 일 년 전 처음 놓았던 그 돌 옆에 놓기 위해.


그녀는 하얀 장미를 가져왔다. 들꽃이 아닌, 꽃가게에서 산 장미였다. 조금 더 형식적인 추도를 위해.


그는 새로운 반지를 가져왔다. 자신이 끼고 있던 결혼반지였다. 아내의 반지 옆에 놓기 위해.


"이제 우리도 이곳의 일부가 되는 거네요."


그녀가 말했다.


"처음에는 양을 위한 자리였는데, 이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되었어요."




영원한 돌봄


"오늘도 나는 다녀왔어요. 그 이름 없는 자리. 양의 무덤. 나의 마음."


그녀가 어느 일요일 저녁에 말했다.


"저도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다녀갈 거예요."


"우리가 있는 한, 이 자리는 계속 살아있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없어져도, 누군가가 계속 찾아올 거예요."


"그게 기억이라는 거겠죠."


"그리고 사랑이라는 거겠죠."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다. 양을 기억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리움을 나누겠다고.


그것이 양을 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필로그: 기억의 건축학


무덤은 죽은 것들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였다.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


매주 일요일 오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찾는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억하고, 함께 치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배운다. 상실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움이 아픔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함께라면 견딜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건축에는 두 종류의 공간이 있다. 채워지는 공간과 비워지는 공간. 사람들은 대개 채워지는 공간에만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비워지는 공간이다. 그 빈 공간이 있어야 건물이 숨을 쉴 수 있다.


무덤도 그런 공간이었다. 비워진 공간. 하지만 그 비워짐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 했다. 모든 사람의 상실을, 모든 사람의 그리움을, 모든 사람의 사랑을.


잊는다는 것은 묻는 일이 아니라, 자주 찾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죽은 것들과 대화한다. 말이 아닌 침묵으로, 망각이 아닌 기억으로, 이별이 아닌 만남으로.


그것이 우리가 배운 기억의 건축학이었다.






-끝-


***


다음 이야기 예고


가을이 오면서, 나는 이상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잡으려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잡히고 싶어졌다. 양이 되고 싶어졌다.


그녀도 같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알았다.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양을 잡는 자에서 양이 되는 자로. 추구하는 자에서 받아들이는 자로. 소유하는 자에서 존재하는 자로.


무덤 앞에서 배운 치유의 힘을 가지고, 우리는 마지막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완전한 자유를 향한 여행을.


5편: "내가 다시 양이 되었을 때"에서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단편:"심장 아래, 피보다 따뜻한 것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