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심장 아래, 피보다 따뜻한 것 #5/6"

5편: "내가 다시 양이 되었을 때"

by leehyojoon ARCH

# 5편: "내가 다시 양이 되었을 때"

## 산문시:


「내가 다시 양이 되었을 때」


_사라진 줄 알았던 나, 내 안에서 다시 울고 있었다._


언제였을까. 나는 양이 되기를 멈췄다. 사람이 되고, 역할이 되고, 무언가를 잡는 손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오래도록, 나는 그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버리고, 때로는 죽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으려 했던 것도, 지키려 했던 것도, 사랑이라 믿었던 것조차도.


그건 양의 시선이 아니었다. 양은 잡지 않는다. 양은 그저, 존재한다. 흐릿한 초원을 가로질러 걷고, 빛이 닿는 곳에 멈춰 서며, 침묵으로도 온기를 나눈다.


나는 다시 양이 되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그래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심장이 말하는 방향으로. 손이 아닌, 귀로. 칼이 아닌, 체온으로. 내가 잃은 것들을 다시 듣기 위해, 다시 느끼기 위해.


그리고 결국, 나는 양이 되었다. 그 조용한 눈빛을 되찾았고, 잡히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무덤 앞에서도 울지 않고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양이 된다는 것은 순한 존재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받아들이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스스로를 무너뜨린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감정을 놓치지 않는 일.


그날 나는 양이 되었고, 그것은, 내가 나에게 돌아간 첫날이었다.


변화는 새로운 것이 되는 게 아니었다. 원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웃음처럼, 모든 것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원히.






***


## 소설:


#5. "내가 다시 양이 되었을 때"



추구를 멈추다


무덤을 만든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치유의 과정을, 기억의 무게를,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존재하는 것의 힘을. 하지만 무언가 아직 부족했다.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뭔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양을 잡으려 하고, 사랑을 붙잡으려 하고, 순간들을 소유하려 했다. 심지어 상실조차 완전히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오히려 나를 더 멀리 데려가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갑자기 왔다. 그녀와 함께 을지로 4가 역에서 양 없는 플랫폼을 바라보던 어느 화요일 오후였다. 우리는 더 이상 양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서 침묵을 나누고 있었다.


전광판에 열차 도착 안내가 나타났다. 2분 후. 하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다음 열차를 타도 상관없었다. 목적지가 없으니까.


"저,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물어보지 않았다. 기다려주었다.


"양이 되고 싶어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으며 나는 놀랐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는데,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았다.


"양이 되고 싶다고요?"


"네. 잡는 자가 아니라, 잡히는 자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당신도 양이 되면 되죠. 우리 둘 다."


"둘 다 양이 되면, 누가 우리를 잡죠?"


"아무도요. 그냥 함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열차가 들어왔다. 우리는 타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다음 열차도, 그다음 열차도. 시간이 중요하지 않았다.




걷기 시작하다


그날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추구하는 대신, 그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서울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홍대 근처의 작은 공원에서 시작해서, 한강까지. 한강에서 을지로까지. 을지로에서 다시 홍대까지. 나는 서울을 천천히 걸었다. 지하철이 아니라, 내 발로.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다른 경험인 줄 몰랐다. 목적지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목적지가 있으면 주변을 보지 못한다. 오직 그곳에 도달하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보인다.


걷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잡지 않았다. 그저 걸었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가고, 햇빛이 머무는 곳에서 잠시 쉬고,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기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잡으려 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더 가까이 와 있었다. 나뭇잎의 떨림, 비둘기의 발걸음,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내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더 이상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다. 마치 양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변화


"요즘 다른 사람 같아요."


일요일 오전, 무덤 앞에서 그녀가 내게 말했다.


"어떻게 다른가요?"


"더 조용해졌어요. 하지만 슬픈 조용함이 아니라, 평온한 조용함이에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변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던 사람에서, 무언가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제가 양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양이요?"


"네. 잡는 자가 아니라, 잡히는 자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녀도 변해가고 있었다.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점점 더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을지로 4가 역에서 양을 찾지 않았다. 대신 한강에서 만나 함께 걸었다.


말보다는 침묵이, 목적보다는 과정이 중요해졌다. 우리는 걸으면서 서로의 호흡을 맞췄다. 같은 속도로, 같은 리듬으로.


"이상해요."


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양을 보지 않는데도 양이 느껴져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알았다. 우리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찾던 양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변하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거죠?"


"더 부드러워지고 있어요. 더 받아들이고 있고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예전처럼 무언가를 잡으려는 손길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손길이었다.




함께 양이 되다


우리는 한강을 따라 걸었다.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그 모든 소리가 우리를 가르쳤다. 저항하지 말고 흘러가라고. 힘주지 말고 맡기라고.


"당신과 함께 걸으면 평화로워요."


그녀가 말했다.


"저도요."


정말 그랬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던,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되던 그 시절로.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을 거예요."


그녀가 계속 말했다.


"뭔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말이 맞았다. 언제부터 우리는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걸었다. 매일 다른 길로. 때로는 홍대 근처의 작은 골목들을, 때로는 한강의 긴 산책로를, 때로는 을지로의 낡은 상가들을.


걷는 동안 우리는 점점 더 변해갔다. 말수가 줄어들고, 몸짓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이 온순해졌다.


그도 함께 변해갔다. 무덤 앞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었다.




완전한 변화


"정말 많이 달라지셨네요."


어느 일요일, 무덤을 찾은 새로운 방문자가 내게 말했다. 중년 여성이었다. 고양이를 잃었다고 했다.


"어떻게 다른가요?"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애쓰는 사람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편안해 보여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놀랐다. 내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인다는 것이.


"변화는 조용히 일어나는 거네요."


그녀가 말했다.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정말 그랬다. 나는 언제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변한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변해왔다.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변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조용한 눈빛을 되찾았고, 잡히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무덤 앞에서도 울지 않고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변한다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게 아니었다. 원래 자신이었던 것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받아들이고, 흘러가고, 그저 존재하는 것.




세상이 달라 보이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지하철 2호선도, 을지로 4가 역도, 홍대 근처의 재즈바도. 모든 것이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해 보였다.


사람들도 달라 보였다. 모두가 무언가를 잡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도 원래는 이랬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잊었을 뿐.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보여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재즈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잡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소유하려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것을.


"이제 정말 달라진 것 같아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잡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요."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양을 잡고 싶어 했던 내가, 이제는 양이 되고 싶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했던 내가, 이제는 소유당하고 싶었다.


"그럼 서로를 잡아볼까요?"


"어떻게요?"


"조심스럽게요. 상처 주지 않게요."




새로운 잡기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잡기였다. 소유하려는 잡기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잡기. 독점하려는 잡기가 아니라, 나누려는 잡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서로를 잡았는데 아무도 갇히지 않았다.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깊이 함께 있게 될 뿐이었다.


한강에서 그녀와 함께 앉아 있을 때였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강물 위로 오렌지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하나가 되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네. 하지만 동시에 더 자유로워졌어요."


정말 그랬다.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속박이 아니라 자유였다.


"이상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아마도 이게 진짜 사랑의 모습일 거예요."


무덤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자리는 이제 다른 공간이 되었다. 각자의 그리움을 품고 모인 사람들의 조용한 안식처.


우리는 서로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앉아있고, 함께 침묵하고, 가끔 작은 미소를 나누었다.




완전한 평화


"이것이 진짜 평화인 것 같아요."


그녀가 어느 저녁 말했다.


"어떤 평화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평화. 그저 함께 있는 평화."


우리는 그 평화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더 원하지 않는 평화.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 평화.


어느 날, 우리는 을지로 4가 역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에. 그곳에는 여전히 양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슬프지 않았다.


"양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왜요?"


"우리가 찾던 것을 찾았으니까요."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더 이상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찾던 것은 처음부터 우리 안에 있었으니까.


"이제 누군가 우리를 찾아올 거예요."


내가 말했다.


"누가요?"


"길을 잃은 사람들이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조용히 기다리면 돼요. 사토가 그랬던 것처럼."




사라진 나를 찾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녀와 함께.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아무것도 잡지 않아도 되는 삶.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


심장 아래, 피보다 따뜻한 곳에서 나는 조용히 숨을 쉰다. 새로운 종류의 숨결로.


그리고 안다.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이었다는 것을. 내가 잃었던 것이었다는 것을. 내가 다시 돌아온 곳이었다는 것을.


변화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이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의 시작.


어린 시절 내몽골에서 본 그 양들을 생각한다. 제사 전날 조용해지던 양들. 그들은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어떤 평화를 알고 있었을까.


이제 나도 알 것 같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의 평화를. 저항하지 않는 것의 자유를.


사라진 줄 알았던 나, 내 안에서 다시 웃고 있었다. 그것은 슬픈 웃음이 아니었다. 기쁜 웃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웃음이었다.




완전한 자유


지금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매주 화요일, 우리는 여전히 어딘가를 걷는다. 목적지는 없다. 그저 함께 걷는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일요일에는 무덤을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슬픔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조용히 존재한다. 무언가 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가 양이 되었나요?"


어느 일요일, 무덤 앞에서 그녀가 물었다.


"글쎄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뭐가 중요해요?"


"지금 이 순간이요. 함께 있는 이 순간."


그가 우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당신들을 보고 있으면 평화로워져요."


"저희가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있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게 특별한 거예요."




새로운 여행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길을 잃은 사람들,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 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들은 대개 같은 질문을 한다.


"양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이미 당신 안에 있어요."


우리는 답한다.


"어떻게 잡을 수 있나요?"


"잡으려 하지 마세요. 그냥 함께 있으세요."


"그럼 언제 양이 될 수 있나요?"


"이미 양이에요. 다만 그것을 잊고 있을 뿐이에요."


그들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우리가 한 말의 의미를.


어떤 이들은 무덤을 찾고, 어떤 이들은 우리와 함께 걷는다. 어떤 이들은 그냥 잠시 머물다 간다. 모든 것이 허락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영원회귀


그렇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끝에서 시작으로, 완성에서 새로운 출발로.


사토가 떠나면서 시작된 이 여행은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계속된다. 우리가 사토였던 자리에 서서, 새로운 누군가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림조차 평화롭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완전하니까. 누군가가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그저 여기에 있다.


어느 화요일 오후, 을지로 4가 역에서 나는 사토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를 보았다. 혼자 플랫폼 끝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무언가 익숙한 것을 보았다.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가 나를 찾을 것이다. 사토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은 순환한다. 끝은 시작이고, 상실은 발견이고, 이별은 만남이다.


양을 잡는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양이 되는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에필로그: 집으로 돌아온 아이


이것은 끝이자 시작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나를 다시 찾았고, 잃었던 것을 다시 얻었고, 헤매던 길에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안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였다는 것을.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였다는 것을. 그리고 양은 잡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매주 화요일 오후 세 시, 나는 여전히 지하철 2호선을 탄다. 하지만 이제는 순환하지 않는다. 그냥 어디든 간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리고 토요일 밤에는 재즈바에서 그녀와 만나, 그 주에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범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이제는 특별하다.


일요일 오전에는 무덤을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죽은 것을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 안다. 모든 여행의 목적지는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모든 탐색의 끝에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양을 잡으려 했던 나는 이제 양이 되었다.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나는 이제 찾아지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변화는 새로운 것이 되는 게 아니었다. 원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웃음처럼, 모든 것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원히.







**끝**



***


시리즈 완결


"양을 잡는 남자" 5편 연작이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을지로 4가 역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고, 재즈바에서는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양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다른 시선으로, 다른 목소리로, 하지만 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양이고, 동시에 양을 찾는 사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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